씩씩하게 고개 드는 연습

#08.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by 서정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꼬까옷을 정성껏 차려입은 아이가 엎드려서 세배를 합니다. 이제는 제법 고개를 들고 조금은 버티는가 싶더니 금세 제 머리가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는 듯 울상을 짓습니다.


머리 위의 족두리, 그리고 두더지의 똥


머리에 빨간 족두리를 얹은 아이를 보니 베르너 홀츠바르트와 울프 에를브루흐의 그림책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가 불쑥 떠오릅니다. 아이는 예쁜 것을 머리에 이고 있지만 눈이 나쁜 두더지는 머리에 똥을 이고 범인을 찾아다닙니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한 장면


이 둘의 상관관계는 그다지 없습니다. 그저 머리에 무언가를 이고 고개를 지탱하는 아이를 보니 대견해서 웃음이 살그머니 나오고, 배 속까지 뜨끈해집니다. 웃다가 보니 머리에 똥을 이고 주인을 찾는 작은 두더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네가 내 머리에 똥 쌌지?


작은 두더지가 해가 떴나 안 떴나 보려고 땅 위로 고개를 쑥 내미는 순간 갑자기 머리에 뭉글뭉글한 것이 철퍼덕 떨어졌어요. 눈이 나쁜 두더지는 아무도 찾을 수가 없어서 막 그곳을 날아가는 비둘기에게 물었어요. “네가 내 머리에 똥 쌌지?” 비둘기는 하얀 물똥을 작은 두더지의 발 앞에 철썩 떨어뜨렸어요.


두더지는 밭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에게도 묻습니다. 말은 쿠당탕 소리를 내며 까만 사과처럼 굵은 말똥을 두더지 옆에 떨어뜨립니다. 당근을 먹고 있는 토끼는 타타타 하고 열다섯 개의 토끼 똥을 두더지 주위로 쏟아냈고, 꿈을 꾸고 난 듯한 염소가 눈 똥은 오도당동당 하며 까만 새알 초콜릿 같은 것이 공중제비하며 잔디 위에 떨어집니다.


방금 되새김질을 끝낸 소는 쫘르르륵 하며 누렇고 커다란 쇠똥 무더기를 쏟아냈고 곧이어 나타난 돼지가 뿌지직 하며 묽은 똥 무덤을 풀밭에 흩뿌리자, 두더지는 그 지독한 냄새에 얼른 코를 싸쥐고 맙니다.


예기치 못한 일에도 씩씩하게 웃는 한 해


결국 파리들의 도움으로 범인이 개 '한스'라는 걸 알게 된 두더지. 녀석은 당당하게 복수를 마치고 기분 좋게 웃으며 땅속으로 사라집니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한 장면



예기치 않게 유쾌하지 않은 일이 생겨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두더지처럼, 우리 아이도 그리고 우리 모두도 씩씩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로운,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으렴.

옛다! 세뱃돈! 철퍼덕, 철썩, 쿠당탕, 타타타, 오도당동당, 쫘르르륵, 뿌지직, 슝


옹알이를 한참 하는 아이에게 세상의 온갖 소리를 선물합니다. 그림책 속 두더지가 만났던 유쾌한 흔적들—철퍼덕, 철썩, 쿠당탕, 타타타, 오도당동당, 쫘르르륵, 뿌지직, 슝. 이 생생한 의성어와 의태어들이 아이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올 날이 머지않았겠지요.




아이는 자라고, 삶을 다시 읽습니다.



[함께 읽은 그림책]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 울프 에를브루흐 (그림)

| 사계절출판사


글 | 서정연 아이가 자라는 찰나를 지켜보며, 그림책 속에서 삶의 물결을 발견하고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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