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팥죽 할멈과 호랑이》 점자 그림책
등을 두드리며, 손끝으로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젖을 배불리 먹은 아이를 곧추세워 트림을 시킵니다. 초보 아빠의 품에 안긴 아이는 제법 또렷한 초점으로 무언가를 응시합니다. 맑은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소란했던 마음도 어느새 평온하고 고요해집니다. 어쩌면 저토록 투명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요. 조그만 아이는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완전합니다. '전존재'라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는 가장 먼저 손가락과 발가락이 열 개인지 세어 봅니다. 열 달 내내 막연히 품어왔던 걱정은 하나하나 확인을 마친 뒤에야 비로소 안도로 바뀝니다. 안도감 끝에 문득, 박윤규 글·백희나 그림의 **《팥죽 할멈과 호랑이》**가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옛날 옛날, 깊고 깊은 산골에 팥죽 할멈이 살았어"로 시작하는 점자 그림책입니다. 우둘투둘한 점자 위에 손끝을 올려보지만, 그저 낯선 질감일 뿐 도통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재미난 옛이야기를 눈이 아닌 손끝으로 읽어 내려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집니다. 함께함을 느끼고 싶어 자꾸만 점자를 만져보게 됩니다.
그림책 속 호랑이는 참으로 어리숙합니다. 봄날 밭매는 할멈을 어흐엉 꿀꺽 잡아먹으려다, 먹을 것 귀한 겨울날 맛난 팥죽까지 덤으로 얻어먹으려고 눈 내리는 날까지 기다리거든요. 하지만 약속의 겨울날, 할멈을 찾아온 호랑이를 기다리는 건 맛난 팥죽만이 아니었습니다.
아궁이 재 속에 숨어 있던 알밤에게 눈탱이를 얻어맞고, 물동이에 얼굴을 처박다 자라에게 코를 꽈작 깨물립니다. 뒤로 물러서다 물찌똥에 줄떡 미끄러져 벌러덩 나자빠지더니, 송곳에 똥구멍을 콱 찔리기까지 하지요.
펄쩍펄쩍 도망치려다 돌절구에 이마를 맞고 기절하자, 멍석이 둘둘둘 말아버리고 지게가 덜렁 짊어진 채 겅중겅중 달려가 깊은 강물에 풍덩 던져 버립니다. 그 후 팥죽 할멈은 아무 걱정 없이 팥죽을 팔팔팔 끓여 이웃과 나누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는 할머니를 돕는 돌절구, 멍석, 지게 같은 정겨운 농기구들과 함께 흥겨운 입말의 재미가 가득합니다. 폴짝폴짝 통통, 엉금엉금 척척, 질퍽질퍽 탁탁, 깡충깡충 콩콩... 다채로운 의성어와 의태어들을 잘 익혀두면, 아이와 옹알이를 주고받는 '입말 놀이' 시간에도 밑천 떨어질 걱정은 없겠다 싶습니다.
아이는 좀처럼 트림을 하지 않고, 안아주는 시간은 길어집니다.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그림책 속 리듬을 나지막이 읊어봅니다.
"이로운, 시원하게 트림하렴. 폴짝폴짝 통통, 엉금엉금 척척, 질퍽질퍽 탁탁, 깡충깡충 콩콩, 덜렁덜렁 쿵쿵, 데굴데굴 척척, 겅중겅중 껑충, 저벅저벅 킁킁, 팔팔팔...“
옹알이를 연신 하는 아이에게 세상의 온갖 소리를 들려줍니다.
아이는 자라고, 삶을 다시 읽습니다.
[함께 읽은 그림책] 《팥죽 할멈과 호랑이》 | 박윤구 (글) | 백희나 (그림) | 시공주니어
글 | 서정연 아이가 자라는 찰나를 지켜보며, 그림책 속에서 삶의 물결을 발견하고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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