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을 견디면 사람이 된다

#12. 《단군 신화》

by 서정연


백일, 사람이 되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를 핏덩이라고 부르지요. 스치기만 해도 꽃잎처럼 문드러질 것 같은 아이가 백일을 견디고 이제는 제법 여물었습니다. 예부터 백일이면 큰 잔치를 하였는데요 백일을 꽉 채운 아이를 보니 가슴이 먹먹해 옵니다.


조금은 단단해졌습니다. 아직은 고개를 받쳐 주어야 하지만 엎어두면 스스로 머리를 들고 버티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백일을 맞은 아이한테 이형구 글, 홍성찬 그림의 **《단군 신화》**를 읽어 줍니다. 맵고 아린 마늘 스무 개와 쓰디 쓴 쑥 한 줌을 먹고 어둑컴컴한 동굴에서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지낸 후 사람이 된 웅녀 이야기, 웅녀의 아이 단군이 다스린 우리 겨레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건국에 관한 신화입니다.


아직 이야기 뜻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아주 먼 옛날’로 시작하는 아득한 이야기를 나직이 들려줍니다.


단군 신화 속 웅녀는 끝내 사람이 됩니다. 빛도 들지 않는 동굴에서, 제 속의 짐승성을 눌러 가며 백 일을 버틴 끝이었습니다. 사람이 된다는 건 어쩌면, 무언가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 견디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단군 신화_1.jpg 《단군 신화》 한 장면


백일을 건너온 아이를 바라봅니다. 울음과 잠과 배고픔 사이를 오가며, 여린 몸도 나름의 동굴을 지나왔겠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보여도, 제 나름의 시간을 묵묵히 통과해 왔습니다.


아이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 백일을 견뎠을까요?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 백날을 견디며 살아갈까요?


백일을 맞아 곱게 차려입은 아이를 보며 그냥 백일을 살아 낸 아이가 대견합니다. 지금 이대로 여기 이 순간을 기억합니다.


단군 신화_2.jpg


이로운, 지금 여기 있어 주어서 고마워!




아이는 자라고, 삶을 다시 읽습니다.



[함께 읽은 그림책] 《단군 신화》 | 이형구 (글) | 홍성찬 (그림) | 보림


글 | 서정연 아이가 자라는 찰나를 지켜보며, 그림책 속에서 삶의 물결을 발견하고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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