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춤을 추었어》
이로운을 처음 만난 날, 세상은 잠시 멈춘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니, 멈춘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주 작은 물결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 하나가 태어났을 뿐인데, 세상은 비로소 새로운 리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춤을 추었어》**가 떠올랐습니다.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도 약하고 여린 존재들을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책. 그래서일까, 이 그림책에는 글자가 없습니다. 말보다 먼저 몸이 움직이는 생명의 본능을 담았기 때문일 테지요.
《춤을 추었어》는 눈으로 읽는 책이라기보다, 마음으로 함께 흔들리는 책입니다.
장영규의 <볼레로>를 틀고 책장을 넘기면, 아이 하나가 춤을 추며 세상으로 걸어 들어옵니다.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히 리듬을 아는 얼굴을 하고서 말이죠.
아이는 사마귀를 보고 잠시 멈추기도 하고, 개미를 보며 세상이 생각보다 바쁘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물고기가 튀어 오르면 따라서 껑충 뛰고, 나비가 날면 자기도 날 수 있을 것처럼 팔을 펼칩니다. 아이들은 세상을 논리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온몸으로 따라 하며 배울 뿐입니다.
물론 늘 춤만 출 수는 없습니다. 개구리를 만나면 깜짝 놀라고, 거친 들판에서는 발이 조금 아프기도 합니다. 커다란 바람이 불어오면 즐겁던 춤은 잠시 멈춰 서고 맙니다.
이럴 땐 잠시 도망쳐도 괜찮습니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그 사실을 아주 조용히 허락해 주기 때문입니다. 용기가 언제나 ‘직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땅 밑으로 내려가는 장면에서는 괜히 숨을 고르게 됩니다. 어둡고, 조용하고, 아무도 박수를 쳐주지 않는 시간. 하지만 그 여행이 끝나면 세상은 갑자기 환해집니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말이죠. ‘아, 이래서 견뎠구나’ 싶은 안도의 얼굴로 우리는 다시 일어섭니다.
이 책은 한 아이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태어나서 기웃거리고, 부딪히고, 잠깐 숨었다가 다시 슬쩍 나아가는 삶의 여정 그 자체입니다.
이로운을 만난 날, 나는 작은 소원 하나를 적어봅니다. “살아가다 커다란 바람을 만나도, 춤추는 법을 완전히 잊지는 않기를.”
잘 추지 않아도 괜찮고 박자를 조금 놓쳐도 괜찮으니, 자기만의 속도로 몸을 움직일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여전히 춤을 배우는 중이니까요. 그래서 이로운과 함께한 첫날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일단, 한번 흔들어 볼까?”
아이는 자라고, 삶을 다시 읽습니다.
[함께 읽은 그림책]《춤을 추었어》 | 이수지(글/그림) | 시공주니어
글 | 서정연 아이가 자라는 찰나를 지켜보며, 그림책 속에서 삶의 물결을 발견하고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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