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많으면 정말 좋은 관계일까
일하는 친구들끼리 일에 대한 관점을 얘기할 때가 된 것같다.
한참 바빠질 때에는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냥 착착 진행이 된다고만 느끼는데 그때가 가장 서로의 생각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고 자칫 잘못 하면 가장 불만이 쌓일 때인 것이다. 서로 바쁘니까 사소한 부분들을 ‘알아서’ 할 때 가장 오해가 쌓인다.
일이 가장 공적인 영역인 것같지만 그 안에서 쌓여가는 감정들은 사소한 것이 촉발할 때가 더 많은 것같다. 어쩐지 저 사람이 내 말에만 반박하는 거같다던가 내 일에만 다른 사람들이 소극적인 거같은 느낌이 있다던가... 너무나 공적인 영역이라 설마 싶지만 공적인 언어를 빌려서 사적인 감정을 풀 때도 많은 것이다.
우리처럼 일하는 동료가 사적인 부분도 나누는 친구일 때는 관계가 틀어질까 싶어 오히려 먼저 배려할 때도 있는데 그런 배려가 오히려 “내가 이만큼 했는데.” “나는 이런거 참았는데 너는 왜”로 나갈 때도 있는 것이다.
어제 했던 얘기들은 요즘 진행하는 모임들이 있는데 지원 사업을 받아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업 계획서를 쓰고 진행한 사람이 나다 보니까 이 프로젝트가 내 것이 되고 다른 사람들은 “한다” 가 아니라 “도와준다” 가 되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함께 카페 일을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왜 선이 그어진 것일까 라는 느낌이 들어서 이 얘기를 서로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몇 명하고 얘기를 나눴더니 어떤 친구는 돈 받은 만큼 일한다... 가 자기 안에 분명하게 있어서 이건 돈을 안 받으니까 마음 나는만큼만 돕는다는 마음을 발견했다고 하고 어떤 친구는 내가 혼자서 잘하니까 괜찮겠지.. 하고 더는 생각을 안했다고 한다.
이럴 때 얘기는 서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가기 보다 서로 뭐가 얼마나 달랐는지 알아가는 것, 무엇보다 마음을 무엇이든 꺼내놓을 수 있는 상태가 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하기 싫었다 와 같은 솔직한 마음을 살펴보고 꺼내어 놓을 수 있으려면 뭐든 말해도 나를 재촉하거나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라는 전제가 있어서는 안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다.
나를 시험하거나 판단하려 한다면 그 저의가 의심되어서 판에 박힌 말들만 하게 될 것이다.
다음 주에 전체가 모여서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지원 사업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내가 해나가고 싶은 것과 카페가 일이 해나감에 있어 방향이 어떤지 등등 무엇보다 나는 노동을, 임금 노동을 어떤 관점에서 해나가고 싶은 걸까 도 함께 얘기해봐야겠다.
오늘 협동조합 신고증을 받아왔다. 2012년에 시작해 이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기까지 쌓여온 것은 사람들의 힘. 나는 이 관계를 믿는다. 배려하지 않아도 좋은 관계. 앞으로 더 만들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