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사람들과 우리마을카페 50의 성장기
SBS 스페셜에 ‘우리동네사람들’이 소개되던 2013년, 적어도 서울시에서는 어떤 흐름이 생겨났다.
‘도시부족’이라는 말은 조한혜정 선생님이 처음 꺼낸 개념이었다. 그 무렵 일본의 후지무라가 쓴 『적게 벌고 행복하기 – 3만 엔 비즈니스』가 번역되어 나왔고, 그 책을 우리는 여러 번 읽으며 그 감각을 몸에 붙이려고 했다.
돈을 많이 버는 대신, 자활노동으로 스스로를 살리고 자급자족하며 여유롭게 사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농사에 관심을 두고, 반찬을 만들고, 옷을 고쳐 입으며 “일은 최소한으로, 삶은 풍요롭게” 를 실천하고자 했다. 도시에서 먹고살 만큼만 벌고, 남는 시간은 자신을 돌보는 데 쓰자는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의 스트레스와 소비의 강박, 부자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로 카페 50은 활기를 띠었다. 마침 서울시의 사회적경제 정책이 확장되던 때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청년청과 혁신파크와 연결되었다. 덕분에 실험의 폭은 넓어졌다. 손모내기, 텃밭 가꾸기, 닭 키우기, 명상, 춤 모임, 그리고 매주 열리던 반찬 만들기까지.
그중에서도 ‘심야식당’은 가장 특별했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모임이었는데, 매번 한 사람이 호스트가 되어 음식을 준비하고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으며 인생을 나눴다.. 이 모임은 4년 동안 꾸준히 이어졌고, 카페50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내가 일하던 곳은 서초동의 지하 카페였다.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낡은 건물, 쥐가 드나들고 화장실에서는 아무리 청소해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은 계속 찾아왔다.
인도의 쁘리앙카, 미얀마의 활동가 마웅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청년까지. 그 지하 공간에서 나는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과 놀이가 통합을 꿈꾸었기에, 노동자이면서 느슨한 노동을 했다. 문 여는 시간도, 닫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우리는 ‘일터이자 놀이터’라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실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길이 너무 빠르게 닦이기 시작했다. 서울시의 지원사업을 받으며 혁신파크 내 ‘창문카페’를 위탁 운영하게 되자,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바뀌었다. 아메리카노도 우유가 들어간 라떼도 청년을 응원한다는 의미로 천 원에 팔기를 위에서 원했고 우리는 맞춰서 그렇게 팔았다. 행사가 많아서 정신 없는 날은 앉을 시간도 없었다. 사람도, 일도, 속도도 늘었다.
천천히 성장한 것이 아니다보니 무엇을 추구하려고 했는지,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가 꽉 차 있지 않아서 이랬다 저랬다 갈팡질팡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매주 회의라는 이름으로 마음 나누기를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했다. 우리끼리는 너무 즐거웠는데 ‘사업’의 이름으로 진행하기에는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치를 추구하고 사람이 모인 것만으로도 응원 받고 지원 사업에 연결되고 하다 보니 오만함이 조금씩 생겨났던 거 같다. 이렇게 해도 된다. 너무 돈 벌려고 하면 안된다 돈 벌려고 하면 돈 벌 수 있어. 그런데 우리는 돈 벌려고 하는게 아니잖아? 추구해야하는 가치를 고민하자 와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