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일하고 행복하기- 쿵짝쿵짝 해나가기
카페 오공에서의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돈은 거의 벌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4명이서 60만 원씩 가져가며 3일씩 일하기로 했는데, 나는 재미있어서 거의 매일 나가게 됐다.
마침 후지무라의 『적게 일하고 행복하기』가 한국에 소개되던 때였다.
카페 오공에서는 자연스럽게 매주 “적게 일하고 행복하기” 모임을 열었다.
책의 내용을 따라 각자 30만 원 아이템을 찾아 실험하고, 결과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나눴다.
청약을 넣지 않아도, 주식을 하지 않아도, 결혼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관계망을 함께 만들어갔다.
그 모임은 무려 6년 동안 이어졌다.
그 시절의 카페 오공은 보물 같았다.
사람들은 에너지가 넘쳤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모이면 늘 새로운 계획을 꾸몄다.
돈 걱정은 했지만 이상하게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파스타와 샌드위치를 해 먹고, 맥주와 요거트, 커피와 차를 팔아 얻은 수익으로
먹고 사는 기본은 해결됐기 때문이다.
조금만 힘을 합치면 더 많은 먹을거리와 재미가 생겼다.
나는 그곳에서 심야식당을 열고 사람들을 만나며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카페 오공은 지하에 위치해 햇빛은 없고 건물은 낡았으며, 화장실은 믿기 힘들 만큼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장점들은 그런 단점들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았다.
심야식당은 드라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한 자리였다.
한 사람이 호스트가 되어 자신의 이슈나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그 이야기에 어울리는 음식을 먹으며 세 시간 가까이 앉아 있었다.
그 시간은 매번 깊고 따뜻했다.
카페는 세련된 공간도, 음료가 특별히 훌륭한 곳도 아니었다. 하지만 성취감과 몰입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나는 그곳에서 푹 빠져 지낼 수 있었다.손님으로 시작했지만 곧 주인 중 한 명이 되었고, 주도적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을 맡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 에너지가 났다.
정토회 기반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환경·생태 활동가, 해외 원조 NGO 종사자, 인권 운동가들까지 다양하게 만났다.
나는 서초동 지하 카페에 매일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있었지만, 내 세상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었다.
반찬 만들기 모임에서 요리를 배우고, 인도 출신 정토회 활동가에게 커리와 난 만드는 법을 배웠다. 아프리카에서 1년 살다 온 사람이 차려주는 식탁에서 “좋은 뜻으로 한 일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아프리카의 원조 시스템이 어떻게 기반 제조업을 무너뜨리는가가 주제인 식탁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채워지고, 나는 행복으로 가득한 나날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