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공동체와 협동조합 카페의 시작
처음부터 주거 공동체 ‘우리동네사람들’에 발을 들인 것은 아니었다.
2012년, 막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적 기업에서 일을 시작하던 때였다. 친한 친구가 정토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서초동이고, 마침 우리집이 그 근처고 서초동에 ‘그 사람들’이 만든 카페에서 무료로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다고 같이 가보자고 얘기를 했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재능기분 모임으로 스페인어라니. 그렇게 찾아간 곳이 우리마을카페 오공이었다.
카페는 허름했고, 한쪽에서는 옷도 팔고 차도 팔았다. 앉아 있는 손님들은 다들 주인장과 아는 사이 같았고, 친구는 들어서자마자 이 사람 저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나는 친구의 지인으로 소개되었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나는 카페쟁이었고 힙한 카페만 가다가 주워온 물건으로 이루어져있는 것 같은 그 장소가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시 갔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마다 스페인어 수업에 나갔다. 스페인어보다 더 눈에 띈 건 카페 칠판에 빼곡히 적힌 다른 모임들. ‘댄스’, ‘적게 일하고 행복하기’, ‘적정 소비 모임’… 매일 뭔가가 태동하는 듯한 활기가 있었다.
처음엔 하루, 그다음엔 이틀, 사흘… 어느새 나는 주 5일씩 카페를 찾았다. 몇 달 다니다 보니 그곳 사람들은 서로를 “법우님”이라 불렀다. 정토 불교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끼리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모임을 여러 번 하면서 그 사람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좋은 인상을 받았고 그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워지고 싶고 알고 싶었다. 이들이 따르는 그 가치가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않고 가을 학기 정토 불교대학에 등록했다.
막상 정토불교대학은 시작할 때 삼배를 하고 반야심경을 외우는 등 종교적 색채가 강해 망설였지만,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함이 의심을 지워주었다. 그렇게 나는 카페에, 사람들에게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우리마을 카페50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30명 남짓한 출자자가 100만 원씩을 모아 만들었다고 했다. 자주 오는 사람도, 거의 안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점점 더 이곳에 발을 담갔다. 주인장 정훈은 잘 웃지만 속을 쉽게 내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간을 쌓아가자 그는 나에게도 다가왔다. 이왕 이렇게 매일 오는 거 같이 카페를 해보자고. 그리고 출자를 해서 주인장이 되는 것도 제의를 해왔다. 이 시기는 서울에서 박원순 시장을 필두로 사회적 경제가 막 시작되며 부릉부릉 시동을 거는 시기였다. 나는 대학교 교수님께도 카페를 소개했고, 어느새 내 삶의 중심은 카페 오공과 그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거 공동체 **‘우리동네사람들’**에 발을 들였다.
2013년 초, SBS 스페셜 〈적게 벌고 더 잘 사는 법 – 도시부족의 탄생〉에 우리동네사람들이 출연하게 되었고, 나도 촬영에 급히 합류하게 되었다. 다큐 촬영을 위해 함께 떠난 제주 여행에서 첫 갈등을 맞이하게 된다. 내가 합류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본 적이 없었던 우리동네사람들의 여성 멤버들이 나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밤마다 열리는 마음 나누기에 그 실체를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여성 멤버 중 2명이 나를 가리키고 울면서 말했다 “어떻게 윤자가 우리보다 정훈이 하고 싶은 것을 더 알아? 얼마나 많은 얘기를 한거야? 이제 우리가 필요없는 거 아니야? 나도 모르는 얘기를 윤자는 알고 있어. 나는 떠나야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둘은 주륵주륵 눈물을 흘렸다. 서운해하는 거 같았다. 그 얘기를 듣는 남자 멤버 두 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용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나는 너무 당황했었다. 앗, 이 모임에는 심적으로 깊이 안 들어가고 같이 일만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성 멤버 3명에게는 데면데면해졌다.
그때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몰랐다. “왜 이렇게 감정적이지?” 라고만 생각했고, 불편해하기만 했다. 제대로 소화를 못 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의 대화, 그 감정이 그 이후 10년간 이어진 공동체의 불씨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것이 내가 ‘우리동네사람들’에 들어가게 된 계기이자, 앞으로 10년을 그들과 함께 살게 된 시작이었다.
우리동네사람들도 우리마을카페50도 중심에는 정훈이라는 만들고 사람을 모은 대표가 있었다. 그 대표의 힘으로 많이 커갔고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거나 따르면서 점점 원의 중심을 따라 만들어지는 조직처럼 커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