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생겨나는 사람 사이의 틈
‘우리동네사람들’이라는 주거공동체는 처음에 친한 사람 여섯 명이 모여 시작되었다. 작은 불씨 같던 그 모임은 시간이 지나며 살이 붙듯 사람이 늘었고, 나는 그 초창기에 카페 50을 통해 들어온 외부인이었다.
이미 서로를 오래 알아온 사람들 사이에 홀로 새로 들어온 셈이었는데, 그들은 귀촌을 고민하고 정토회 활동을 함께해온 사이였다. 마음이 맞아 시작한 공동체였기에 그들끼리는 단단해 보였다.
그런데 훗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 친밀함의 밑바닥에는, 서로의 결혼 과정에서 주고받았던 조언과 감정이 쌓여 만들어진 말 못 할 서운함이 오래전부터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공동주거의 첫 페이지는 이미 약간의 균열을 품은 채로 시작되었던 셈이다.
겉으로 보기엔 ‘시조새 그룹’이라 불릴 만큼 끈끈해 보였지만, 알고 보니 그 사이에도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기준으로 새로운 무리가 생겨났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친한데, 우리는 왜 이 정도일까?”
“저 그룹에 낄 수 있을까?”
이런 감정들이 생기며 또 다른 그룹이 생기고, 그 옆에 또 다른 감정의 집합이 생기고… 그런 구조가 반복되었다.
사람이 늘어 세 집이 되었을 때는 ‘401호’라는 독특한 상징이 생겼다. 모두가 401호에 살고 싶어했거나, 혹은 그곳을 일부러 외면했다. 초기 멤버들이 살던 집이었고, 늘 재미있는 이벤트와 밥상 모임이 일어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공동주거를 꿈꾸며 들어온 사람들 중 일부는 401호만큼 끈끈하지 않은 다른 집의 분위기를 아쉬워했다.
우동사의 초기 ‘분란’은 오래된 멤버들 사이의 친밀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었다.
특히 ‘A’라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누구는 잘 맞고, 누구는 그렇지 않았다.
안 친한 사람은 “나는 왜 그만큼 친해지지 못할까?” 하고 아쉬움을 표현했고, A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라며 불편해했다.
우동사는 정토회에서 배운 불교적 언어와 수행 논리를 도입해 감정 문제를 다뤘다.
그러나 “서운함은 누구의 것인가?”, “감정은 어디서 오는가?”와 같은 질문들은 갈등을 존재론적·내면적 문제로 환원시키는 효과를 냈다.
서로의 감정이 어긋났는데, 그 어긋남을 푸는 방식은 늘 ‘정토회식으로 우리끼리 생각해버린 질문’이었다.
“서운함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가?”
갈등의 본질을 보고 해결하기보다는, 불편함 그 자체를 개인 수행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식이었다. 결국 ‘안 친한 게 서운하다’고 말하던 사람이 공동체를 떠나면서 그 갈등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실은 그때 제대로 다루지 못한 감정의 잔해가 공동체의 기초에 그대로 남았다.
즉, 구조적·대인관계적 문제를 개인 수행의 문제로 치환해버렸고, 실제 관계 갈등은 해결되지 않은 채 억눌렸다.
이 패턴은 카페 오공에서도 똑같았다.
누군가는 일을 많이 하고, 누군가는 적게 했다.
금·토 카페지기 같은 인기 없는 시간을 계속 피해가는 사람이 있었고, 이에 대해 불만을 말하기보다 법륜스님의 책을 읽거나 108배를 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침묵하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도대체 그게 뭐였을까? 싶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불교적 관점을 지켜보려고 정토회, 담마코리아 명상, 나눔의 장을 다니며 정말 애썼다.
공동체 안에서 ‘좋은 사람’으로 기능하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동시에 이기적인 마음이 뒤섞여 있던 시절이었다.
속으로는 조용한 균열이 쌓여가던 시간이었지만 ‘우리’가 된 사람끼리는 즐거웠다. 일단.
마침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 부흥과 맞물려 정신없이, 여러가지 일들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