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갈등은 반드시 풀어야 한다. 감정의 앙금이 가장 위험하다
저번 주, 지금 살고 있는 오늘 공동체의 전체 모임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한 공동체』를 함께 읽는 시간이 있었다.
몇 년째 꾸준히 읽어오고 있는 책이다. 대표님과 한 장 한 장 소리내 읽으면서 나누는 시간.
마침 그날 읽은 챕터는 갈등에 관한 부분이었고,
어쩔 수 없이 ‘우리동네사람들’이 떠올랐다.
핀드혼 공동체의 한 사람이 말한 부분 발췌-
“무언의 비판이야말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힘이다.
인간관계가 원만하면 재정 문제나 의사결정 문제 등 공동체 내의 모든 일도 잘 된다.
풀리지 않은 갈등이 있으면 제대로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책을 읽으며, 우동사의 우리는 과연 갈등을 다루고 있었을까,
아니면 애써 덮고 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동네사람들을 이루던 사람들 안에서,
아주 가까웠던 몇 사람 사이에서,
결혼 전 연애 과정에서의 숨김이나 정서적 문제로 쌓인 서운함이
해소되지 않은 채 밑바닥에 남아 있었고,
그 감정은 자꾸만 다른 방식으로 튀어나왔다고 한다.(이 스토리의 진짜 속내는 우동사가 끝난 이후에야 들었다. 이런 갈등의 여지를 남들이 아는 것도 서로 원하지 않았던 거 같다.)
여러 마음의 갈등이 일본 스즈카시에 있는 애즈원 공동체에 다녀오면서
많이 풀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동시에 희망을 보았다.
그때부터 우리동네사람들의 무게중심은
정토회나 마음나누기에서
애즈원 공동체로 조금씩 옮겨가기 시작했다.
2015년에서 2020년 사이,
애즈원 공동체는 한국의 많은 대안공동체와 대안학교들이 찾는 인기 탐방지가 되었고,
그곳에서 “마음이 풀리는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들이 쌓여갔다.
아이를 낳고 싶었던 아내와 딩크를 원하던 남편의 갈등이
프로그램을 통해 풀려 아이를 낳게 되었다는 이야기,
관계의 매듭이 풀렸다는 경험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이거다.’
애즈원의 짧은 코스, 긴 코스를 다니며
그 배움을 우리동네사람들의 삶과 일에 적용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던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애즈원에 다녀온 사람,
다녀와서 “잘하고 온” 사람,
그리고 애즈원을 “잘할 것 같은” 사람.
어쩐지 이상한 기준들이 생겨났고,
그 기준에 따라 사람들은 은근히 구분되기 시작했다.
애즈원에 다녀온 사람들이 따로 모임을 열면서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초대되지 않았고,
오고 싶어 하던 사람이 누구는 초대되고 누구는 배제되는데 누가 그것을 정하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서운함을 표현하거나 서운하게 만드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다.
“너를 서운하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야. 무슨 말하는지 알겠어?”
그 말은 서운함이나 배제, 소외라는 감정 자체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었다.
점점 애즈원을 오래 다녀온 사람들,
코스를 많이 밟은 사람들 중심으로
매일같이 모임이 이어졌고, 그들만의 언어가 생겨났다.
일본어를 그대로 번역한 듯한 수동태 표현들.
“그렇게 해받았어.”
“꽤~ 보여왔어.”
그 말을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운 거리감이 생겼다.
“소외시키려는 건 아니야.”라는 말로
이 틈을 덮으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그 말에 반발해 아예 모임에 가지 않게 된 사람들도 생겨났다.
결국 공동체는 애즈원 이론을 얼마나 잘 받아들였는지를 기준으로
조용히 갈라지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동네사람들이 확장되고 사람이 늘어나면서
마음수행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갈등들이 생겼다.
그 갈등을 다룰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초기 멤버들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졌고,
그 괴로움을 애즈원의
‘제로에서부터 본다’는 방식으로 한 번에 해결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론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시도는
어쩔 수 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여행 공동체』나
『나우토피아』 같은 책들을 통해
이미 수없이 경고되어온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우리동네사람들은
사회적경제와 결합해 점점 활발해지면서
“우리가 잘하고 있다”,
“우리만 한 공동체는 없다”는 오만함이 감돌았다.
돌아보는 공부는 멈췄고,
공동체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그 끝은 결국
고립과 배제였다.
고립된 섬.
그 안에서 우리는 잘 살고 있다고 믿으며,
오만한 줄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