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 낯선 안도감 속으로
결국 도봉으로 이사를 왔다. '오늘공동체'가 있는 곳이다. 이곳으로 오기까지 마음은 몇 번이고 곤두박질쳤다. 십 년 넘게 살며 일하고 사랑했던 그곳, '우리동네사람들'을 떠난다는 것이 왜이리 어려운지. 미련은 끈질겼고, 혹시나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회로를 자꾸 돌렸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이미 한계였다. 오늘공동체 대표님과 매주 상담을 하며 내 상태를 마주하게 되었다. 도봉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면 반짝 힘이 솟다가도, 인천으로 돌아가면 늪에 빠진 듯 다시 가라앉는 패턴의 반복. "제발 부탁이니 다시 돌아가지 말고 이 근처에 살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필터 없이 나를 객관적으로 봐주는 대표님의 간곡한 당부가 나를 움직였다. 그렇게 나는 이곳으로 왔다.
무너진 마음과 곁을 지키는 사람들
이사를 왔지만, 나는 여전히 무기력했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수면제를 먹었다. 생각이 너무 많다보니 먹지 않으면 자기 어렵고, 먹으면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다. 가끔은 기분이 고조되어 웃고 떠들다가도, 돌아서면 뚝뚝 눈물을 흘렸다. '실패했다'는 감각은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우리동네사람들' 이라는 인천 구석에 있는 하나의 공동체가 사라진 것뿐인데, 마치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 것 같았다. 나는 내 자아를 그곳에 너무 깊이 의탁하고 있었나 보다. 너무 결탁해서 그 성공이 나의 성공인 것처럼 여겼던 것 같다.
이 우울했던 시기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진다. 내가 오늘 공동체 주택이나 카페 구석에서 눈물 주륵주륵 흘리며 울고 있을 때면,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가왔다. 도봉에는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빵과 콜드브루가 기가 막힌 곳이다. 내가 그곳에 앉아 있으면 조용히 따뜻한 라떼 한 잔을 더 내어주거나, 갓 볶은 원두로 내린 드립 커피를 슬며시 밀어주곤 했다. 말 없는 포옹, 따뜻한 음료 한 잔. 그것이 그들이 건네는 위로의 방식이었다.
아이들이 건네는 뜻밖의 환대
오늘공동체의 특별한 점은 어른과 아이의 경계가 유연하다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동등하게 참여한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존중받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놀라울 만큼 성숙했다. 내가 울고 있을 때면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슬쩍 다가와 먹고 힘내서 눈물 흘리라고 아이스크림을 건네주곤 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와, 생각난다, 이모 그때 여기저기서 울고 다녔잖아요"라고 기억할 때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지만, 동시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사실 내가 이곳에 마음을 확 열게 된 건 아이들 덕분이었다. 처음 탐방을 왔을 때, 식탁에 앉아 있는 낯선 내게 아이들이 몸을 기대며 물었었다. "이모, 이건 어떻게 먹는 거예요?"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다정할까. 경계심 없이 파고드는 그 순수한 온기에 나는 심쿵하며 속절없이 무장 해제되었다. 우리동네사람들의 아이들과 다르게 인사도 잘해, 말도 잘 걸어, 포옹도 잘 해...
친분이 아닌, 학습과 긴장으로
무기력에 빠져 있는 나를 위해 대표님은 일자리를 주선해 주시고, 카페 일도 맡겨주셨다. 사람들은 편견 없이 내 이야기를 들었고, 나를 믿어주었다. 그 넉넉한 품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람들의 품이 넓은 건 그들이 태생적으로 다정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치열한 공부와 훈련의 결과였다. 그들은 '우리가 왜 공동체를 하는지', '공동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었다. 인지 상담, 대화법, 역사, 심지어 성격장애에 이르기까지. 전체 모임에서 강연을 듣고 토론하며 그들은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오늘공동체를 지탱하는 믿음은 이것 같았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 지금 모습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며 계속 변화해 나가는 것. 그래서 이곳에 들어오려면 1년의 '공동체 학교' 과정이 필수다. 서로를 알아가고, 내가 정말 이렇게 살 수 있는지 가늠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며
'우리동네사람들'의 실패를 겪고 나니 비로소 보였다. 1년이라는 탐색의 시간, 그리고 학습하는 구조가 얼마나 큰 행운이자 필수적인 요소인지. 이전의 우리는 친분과 마음 가는 대로 뭉쳤고, 결국 남은 건 핵심 멤버와 친한 사람들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친분이나 지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사적인 감정을 경계하는 날카로운 긴장감이 흘렀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사람 사는 곳에 굳이 이런 긴장이 필요할까? 마음 편하게 살면 안 되나?' 하지만 살아보니 알겠다. 부부 관계도, 부모 자식 관계도, 그 적당한 긴장감이 없을 때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공동체에서 말하는 "긴장감이 필요하다"는 말은 글로 읽을 때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삶으로 겪어보니 뼈저리게 이해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이 공동체가 유지되고 확장될 수 있었던 힘. 그것은 한 명 한 명이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부단한 노력, 그리고 그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든 강력한 리더십 덕분이었다. 상처 입은 나는, 그렇게 다시 사람들 속에서 걷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