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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고로호 Jun 01. 2020

험담은 나의 힘

공무원 회상기 #11


오전부터 정신없이 바빠서 진이 빠진 날, 점심시간만이라도 아무 말 없이 쉬고 싶어서 혼자 카페에 왔다. 다들 밥을 먹으러 간 시간, 아직 구청 앞 카페는 한적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내게 주어진 소중한 휴식시간에 감사하고 있는데 갑자기 직원인 듯 보이는 무리가 카페에 들어왔다. 그리고 곧 조용한 카페 안에서 낯익은 이름이 마구 튀어 올랐다. 뒷담화였다. '그 사람 욕먹을 짓을 했네.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줘야지.’하고 흥미를 느끼기도 전에 한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람이 모이면 으레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하게 마련이지만 한 발짝 떨어져 방청객의 입장이 되고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 귀중한 점심시간에 향기로운 커피를 두고 직장 사람들의 험담을 한다는 것만큼 비생산적인 일은 없어 보였다.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나 자신이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하게 느껴졌다. 사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저기 모여있는 네 명 중에 넷의 뺨을 후려칠 정도로 심술궂은 얼굴과 음흉한 목소리로 뒷담화를 할 수 있다. 힘없는 하급 공무원이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때 가장 쉽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솟구치는 상대가 생겼다면 한시라도 빨리 이 화를 같이 나눠 줄 사람을 찾게 된다. 조심스럽게 동지로 점찍은 이를 찾아 간을 본다. “주임님, 그 팀장님 어떤 것 같아? 괜찮아요?” 대화중에 무심한 듯 미끼를 던져본다. “글쎄, 잘 모르겠어. 말을 섞을 일이 없네.” 실패다.


실망하기는 이르다. 대게 한 사람에게만 못되게 구는 사람은 없다. “아, 그 팀장님? 그 사람 진짜 이상하던데. 자기 팀 일도 없으면서 이번에 새로 떨어진 업무를 우리 팀에 넘기려고 안달 났어. 바빠죽겠는데 옆에 와서 여기는 한가하네 이러더라고.” 드디어 두 손을 맞잡고 원 없이 험담을 나눌 수 있는 영혼의 동지를 만났다. “그죠? 그 사람 진짜 이상하죠? 우리 팀도 아닌데 업무시간에 자꾸 나한테 와서 어깨를 똑바로 펴고 다니라는 둥, 씩씩하게 걸으라는 둥, 오만 잔소리야. 말투는 또 얼마나 거들먹거리는지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어요.”









억눌렀던 불만이 터져 나와 서로 치열하게 물고 물린다. 단 1초의 쉼도 없이 대화는 이어진다. 우리의 음험한 속삭임이 주위에 새나가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지만 그에 반비례해서 열기는 점점 불타오른다. “맞아맞아.” 상대방의 분노에 공감하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험담의 대상에 대한 적개심으로 얼굴을 한껏 찡그린다.


방금까지도 기운 없이 늘어져있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단지 혀 하나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사람을 이 조직에 폐만 끼치는 쓸모없고 악독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대화 속에서 복수는 쉽게 이뤄진다. 머리를 모으고 열정적으로 떠드는 우리는 완벽하게 하나가 됐다. 이번에는 그냥 당하고 넘어갔지만 다음번에는 흔들림 없이 차갑게 무시해주자며 같이 다짐한다.


한참을 떠들다 뒷담화를 이어나갈 소재가 떨어졌을 때가 돼서야 아쉽게 작별을 나눈다. 돌아서는 순간 밀려오는 건 후회다. 노곤함이 느껴질 정도로 열심히 물고 뜯었지만 현실에서 그 사람은 상처하나 없이 건재하다. 심지어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불평과 분노를 쏟아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설령 오늘 나눴던 밀담이 그 사람의 귀에 들어간다 해도 실질적으로 그에게 미치는 타격은 미미할 것이다.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그 사람에게 쓸모없이 소진해버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성공적인 복수를 자축하며 후련함에 두근거리던 마음이 쓰라리다.


그렇다면 카페 창가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할까? 모든 것을  탓으로 돌리는 종교적인 성찰? 나에게 상처를  사람까지  사랑으로 감싸는 인류애적인 관조? 권력구조의 하급 계층이 감내해야 하는 고난에 대한 사회과학적인 고찰? 그것도 아니면 현실을 외면한  오직 희망적이고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이상적인 대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슬같이 맑은 이야기만 나누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상한 인격의 소유자가 아닌 나는 무슨 일만 생기면 입이 간지러웠다.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입으로 푸는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왕 할 거 후회와 자책감을 버려보자. 상식선에서 자신만의 몇 가지 규칙을 만들어 지키면 나름 건전하고 바람직한 험담을 도모할 수 있다.


-험담은 돌고 도는 것, 내가 그러하듯 다른 사람들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험담은 대화의 양념처럼 존재해야 한다. 대화의 처음과 끝을 모두 뒷담화로 도배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

-험담의 대상은 일대일의 정정당당한 싸움이 허락되지 않으며,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골고루 불편함을 주는 사람으로 한정한다.

-험담을 했던 대상이라도 관계 개선의 여지는 남겨놓는다.


가끔 험담이 험담을 부르는 무의미한 자동 반복이 시작되려고 할 때 내가 정한 선을 상기하며 균형을 잡았다.


건전하고 바람직하다는 수식어로 뒷담화를 미화해보려고 해도 당당하게 앞에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뒤에서 눈치 보며 웅성이는 모습은 한심하고 비생산적이며 쓸모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게는 꼭 필요한 행동이었다. 뒷담화의 시간을 통해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고 무리 안에서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과 연대했으며 더 이상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으리라는 결의를 할 수 있었다. 뒤돌아서고 나면 밀려드는 허무함과 자괴감에도 불구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곤거리는 것을 멈출 수 없던 것은 험담이야말로 나를 함부로 대하고 작게 만드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떨쳐내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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