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일기 #13
새벽에 고양이들이 돌아가며 우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해가 뜨고 나서야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더니 눈이 뻑뻑하고 머리가 흐리다. 오늘 꼭 써야 할 글이 있어 책상에 앉았다. 일단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기는 했는데 단어를 몇 개 나열하고는 핸드폰을 쥐고 소파에 누워버렸다. "안돼, 정신 차려!" 이럴 때 나는 한 마리의 딱따구리가 돼야만 한다.
가을이 질 무렵 수종사에서 딱따구리를 만났다. 수종사는 수령이 500년이나 되는 은행나무 보호수와 한강을 내려다보는 풍광으로 유명한 절인데, 가는 길이 왕초보운전자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가팔랐다. 벌벌 떨며 차로 산길을 오르다가 포기하고 산 중턱에 간신히 차를 댔다. 왜 여기를 온다고 했을까 후회하며 나머지 길을 올랐다. 절에 도착했지만 왔던 길을 차로 어떻게 내려갈지 심란해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햇살에 반짝이는 두물머리를 앞에 두고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마음을 온전히 그 시간과 장소에 두지 못하고 서둘러서 떠나려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힘찬 소리. "딱딱딱딱딱딱, 딱딱딱딱딱딱!" 한 뼘이 넘어 보이는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고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코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 도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오색딱따구리와 닮았는데 그보다 크기가 컸다. 큰오색딱따구리였다. 나무에 나뭇잎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딱따구리가 잘 보였다. 머리에 포인트가 되는 빨간색이 눈에 띄지 않는 걸 보니 암컷 같았다.(수컷은 빨간색 모자를 쓰고 있다.) 큰오색딱따구리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실제로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딱따구리는 벌레를 사냥하고 둥지를 만들기 위해 나무에 구멍을 내는 새이므로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광경은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자니 순간적으로 그 광경에 빠져들었다. 새는 한참 전부터 나무에 머문 것처럼 보였다. 새가 앉아있는 주변의 나무 껍질이 손바닥 넓이로 벗겨져 있었다. 빠른 속도로 한 자리를 쪼는데 부리가 나무에 닿을 때마다 나무 부스러기가 날아 흩어졌다. 집요했고 끈기 있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가 숲을 울렸다. 숲 너머로 저 멀리 강물이 반짝반짝 빛났다. 경사를 오르며 곤혹스러웠던 감정이, 무사히 아래로 내려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딱따구리의 완벽한 몰입을 구경하는 나 또한 놀랍도록 집중했다. 오래 찾아 헤매던 순간이었다.
좋아하는 일에 깊게 빠져드는 몰입의 경험을 사랑한다. 경제적인 궁핍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같이 계획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스스로 설정한 과업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니, 몰입(flow)의 개념은 내게 행복의 지표가 되었다. 평소에는 산만한 편이라 뭔가에 집중할 때의 느낌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몰입의 측면에서 바라본 작년 한 해,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집중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는 매일을 쓰고 그리고 읽는 활동으로 꽉 채우는 것이 꿈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일 년간 꿈이 완벽하게 이뤄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많이 그렸고, 힘들이지 않고 썼으며, 집중해서 읽었다. 언젠가부터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의지와 활력을 사라지게 만든, 책상 앞에 앉지 못할 개인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었지만 변명이 당위성을 잃은 다음에도 사라진 집중력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책을 펼쳐도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생각을 한 데로 모으지 못해 글 하나를 쓰는데 3주를 질질 끈 적도 있었다. 그리다가도 빈번하게 멈췄다. 집중하는 힘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고 처음보다는 나아졌음에도 아직 더 회복할 부분이 남아있었다.
운길산 자락, 수종사의 딱따구리를 보며 잃어버린 집중력에 대해 생각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방해요소는 핸드폰이다. 현대인이라면 당연히 핸드폰과 손이 하나가 되어 있는 게 아니냐며 웃어넘기고 싶지만 증세가 심했다. 직장을 다니지 않아 강제로 행동을 통제해야만 하는 요인이 없는 내게 핸드폰은 24시간 열려있는 손쉬운 탈출구이자 너무 많은 가능성이 담긴 화면이다. 어떤 활동이든 고비가 있다.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와 딱 떨어지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글이 막혔을 때, 아무리 고쳐 그려도 그림의 형태가 이상하게 일그러질 때, 반복해서 읽어도 문장이 머릿속에서 제대로 해석이 되지 않을 때, 예전 같으면 조금 더 힘을 내서 어려운 구간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바로 핸드폰의 쉽고도 재밌는 세상으로 도망간다. 작업을 하다 잡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핸드폰으로 내 삶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어났으면 하는 갖가지 가능성을 검색한다. 작은 화면을 쳐다보는 일은 너무도 유혹적이라 진정으로 즐기고 싶은 활동을 내팽개치게 된다. 몰입으로 얻을 수 있는 환희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지루한 부분을 참고 견뎌야 하는데 화면을 바라보는 일에만 익숙해져 진지한 세계에 집중하기 힘든 악순환이 반복된다.
딱따구리가 나무을 두들길 때마다 뇌에는 큰 충격이 가해지는데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라는 책에 따르면 딱따구리의 뇌근육은 연골이 촘촘히 연결되어 충격을 완충시킨다. 큰오색딱따구리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나무에 부리가 닿을 때마다 자동으로 눈을 감았다 뜨는 행동을 반복하는데 이는 눈알이 튀어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나무를 쪼기 위해 특화된 신체적 특성을 타고났음에도 나무를 쪼는 일이 딱따구리에게 별거 아닌 일은 아니다. 아무리 날카로운 부리와 충격에 강한 머리를 갖고 있다지만, 한두 번 두들겨서는 나무에 구멍을 낼 수 없다. 발톱으로 한자리에 몸을 단단히 고정하고 한점을 향해 끊임없이 부리를 부딪혀야 한다. 전력을 다해.
딱따구리가 나무껍질을 부리로 망치질하며 이제 나무 쪼는 게 지겹다거나, 벌레 말고 딴 걸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을 상상하기 어렵다. 동물은 생존하기 위해 집중한다. 완전하게 현재를 산다. 인간은 자주 지금에 머무르는 데 실패하고 어딘가를 떠돈다. 과거에 두고 온 더 많은 기회와, 미래에 있을 더 많은 행복. 더 신나고 즐겁고 훌륭하고 값진 무언가를 찾아 현재를 자꾸 벗어난다. 내가 딱따구리였다면, 이 나무에 앉았다가 저 나무에 앉았다가, 나무를 쪼았다가 말았다가, 산만한 날갯짓으로 작은 구멍 하나 내지 못하고 배를 곯아 나무 밑으로 풀썩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인간이기에 지금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해도 당장 생존에 치명적인 위협을 받지 않았다. 대신 지금에 충실하지 못하고 귀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헛헛함에 속이 쓰리다.
나는 오늘 딱따구리가 되어볼 작정이다. 핸드폰을 소파 끝자락에 엎어두고 일어났다. 진득하게 한 나무에 구멍을 내기 위해 미리 화장실도 다녀오고 마실 차도 준비했다. 눈이 건조해지면 넣을 인공눈물과 혹시 콧물이 나올 것에 대비해서 휴지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우리 집 거실이 숲이 되어 줄 것이다. 아까 단어 몇 개로 표시해놨던 나무에 다시 앉았다. 의자 끝까지 엉덩이를 밀어 넣으며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경건하게 키보드에 두 손을 올리고 나무의 목표지점 아니, 쓰던 글에 시선을 고정한다. "탁탁탁탁탁탁, 탁탁탁탁탁탁!" 그 가을, 나무 사이를 울렸던 힘찬 소리가 내 손끝에서 다시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