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일기 #14
무릎을 다쳐 집에만 머문 지 열흘만의 산책. 조심스럽게 길을 걷는데 한낮의 햇빛에 정수리가 따뜻해졌다. 다쳤을 때는 곳곳에 눈이 쌓여있는 한겨울이었는데 열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창을 열면 새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사이에 입춘도 있었다. 겨울을 제외하고 항상 새똥이 떨어지는 주차 자리를 안심하고 이용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다시 새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남편이 말했던 일이 기억났다. 슬그머니 비켜나는 겨울과 저만치서 다가오는 봄이 서로 밀당을 하다 이윽고 완연한 봄이 될 것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불편한 느낌이 든다. 이제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변할 텐데 나 혼자만 지난 계절의 흔적을 고스란히 지닌듯한 무겁고 굼뜬 느낌.
겨울이면 작업이 막힐 때마다 달달한 간식을 먹으며 집에서 은둔한다. 2월도 중반을 향해 넘어가고 갑자기 봄기운이 찾아오면 정신이 번쩍 든다. 턱선이 희미해지고 바지는 꽉 낀다. 움직임도 둔하다. 매번 겨울이면 살이 찌지만 올해는 계속된 코로나와 다리 부상 탓으로 더 몸이 무거워졌다고 변명을 해본다. 예쁘고 날씬하고 싶다는 욕망에서는 몇 년 전에 해방됐다고 믿기에 미용이 목적이 아니지만, 건강을 위해서도 산뜻한 움직임을 위해서도 지난 계절이 몸에 남긴 지방을 덜어낼 때가 왔다.
내가 나비의 애벌레라면 다이어트 고민 없이 그동안 잘 먹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몸으로 바로 번데기가 되면 되는데. 봄꽃이 필 무렵, 하늘을 날 수 있을 만큼 가볍게 다시 태어나면 되는데. 앞으로 몇 달 동안 겪어야 할 지방을 덜어내는 절차(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단순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를 떠올리니 벌써 배가 고프고 기운이 빠지는 것 같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단숨에 짠! 하고 변하면 안 되나? 마법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그 과정이 길고 어렵다는 것을 직접 봤으면서도 부질없는 상상을 한다.
애벌레를 키운 적이 있다. 야채 가게를 하는 친구네 집 점심 밥상에 나온 상추가 얼마나 싱싱하고 맛있던지. 상추에서 1센티도 되지 않는 반투명한 연두색의 애벌레가 나왔다. 배추흰나비 애벌레였다. 지금과 달리 나방은 물론 애벌레도 징그러워하던 시절이었지만 미래의 아름다운 배추흰나비를 버릴 수가 없었다. 애벌레와 밥상에서 챙긴 상추 몇 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애벌레의 본분은 먹는 일. 바닥에 꽃무늬가 그려진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서 애벌레는 열심히 상추를 갉아먹으며 쑥쑥 자랐다. 몸이 커갈수록 빛나던 연두색이 빠지고 칙칙한 갈색으로 변했다. 이상하게 점점 징그러워졌다. 상추를 갈아줄 때마다 혹시라도 애벌레가 손에 닿을까 몸서리를 쳤다. 그래도 명색이 나비 애벌레인데 내가 그러면 안 되지 싶어 각오의 각오를 하고 애벌레를 만져보기로 했다. (사람의 체온이 훨씬 높아 뜨겁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애벌레도 민달팽이도 손으로 직접 만지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손끝을 살짝 애벌레의 옆구리에 갖다 댔다. 갈색 무늬가 소용돌이치는 거친 외모와 다르게 세밀한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따뜻했다. 왜 따뜻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름이라서 주위의 온도에 맞춰 애벌레의 몸도 따뜻했던 것일까. 곤충이 변온동물이라는 사실을 모를 때라 그 따뜻함에 감동이 왈칵 올라왔다. '너 살아있구나. 나랑 똑같아.'
여러 날을 꾸준히 먹고 먹어 지금의 나처럼 크고 통통해진 애벌레는 어느 날 갑자기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내고는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뭔가 일이 잘못됐다. 애벌레가 죽는 줄 알고 끝까지 볼 용기가 없어 자리를 떴는데 한참 뒤에 보니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애벌레가 번데기에서 깨어났다. 새하얀 날개를 팔랑이는 요정 같은 배추흰나비가 아니라 진한 갈색의 나방이었다. '이럴 리가. 내 나비가 나방이었다니.' 충격에 빠져 나방이 날개 한쪽을 제대로 말리지 못해 날지 못한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나방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심각하던 때에 집에 모기가 나타났다며 아빠가 온 집안에 에프킬라를 뿌리기 시작했다. 살충제가 나방에 닿을까 급하게 바구니를 안아 들고 무조건 밖으로 뛰었다. 날지 못하는 나방을 집 앞 화단에 버렸다.
배추흰나비인 줄 알고 나방 애벌레를 키운 경험이 있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다. 찍어놓은 사진이 없어 내가 키운 나방이 정확히 무슨 종류인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나비인 줄 알고 나방 애벌레를 애지중지 키운 다른 이들의 자료를 비교해보니 도둑나방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당시에는 나방에 대한 공포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충격에 휩싸였지만, 이 일은 내 미물 인생에 특별한 계기가 됐다. 나비면 어떻고 나방이면 어때. 키워보니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어 성체로 변하는 일은 다 똑같지 않은가. 곤충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뭐가 나비 애벌레이고 뭐가 나방 애벌레인지 구분하기도 힘들다. 커다란 뿔이 나 있는 뾰족뾰족 난해하게 생긴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투명한 연두색 몸의 오동통 귀여운 애벌레가 나방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종류의 나비와 나방의 애벌레, 귀엽기도 징그럽기도 한 각양각색의 외양 너머, 애벌레의 본질을 생각해본다. 포동포동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장차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오를 귀여운 아기들.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면 털이 송송난 징그러운 송충이라도 사랑스럽지 않을 이유가 없다. 꼬물이들이 미래의 나방과 나비가 되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먹고 여러 번 탈피를 반복하며 작은 애벌레에서 큰 애벌레로 성장하는지, 힘들게 몸을 비틀며 번데기가 되고 오랜 시간 기다려 날개를 다는지, 그들이 보내는 날들이 수고스럽고 대견하다. 살아있는 것이 변하기 위해서는 착실하게 매일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마음이 급해도 건너뛸 수 없는 과정. 단번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비와 나방이 번데기가 되어 우화하는 모습을 한참 보다 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도 아니고 그저 지방을 얼마간 덜어내는 일쯤이야. 다친 무릎도 회복 중이고, 봄도 오고 있으니 꾸준히 걷고, 적당히 먹는 매일의 단계를 착실하게 밟을 의욕이 생긴다. 봄이 겨울의 흔적을 지우면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아다닐 나비와 나방에게 미리 약속을 해본다. '훨훨 날아라. 과거의 애벌레들아. 내가 변한다 해도 너희처럼 공기를 타고 춤출 수는 없지만 대신 지금보다 아주 아주 조금만 가벼워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