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일기 #15
처음 창작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내 글과 그림이 마치 한송이 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만든 것이 크고 탐스럽고 아름다워 그런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작고 특색이 없는 들꽃처럼 느껴졌다. 노란빛이 청초한 수선화나 색이 다양하고 화사한 튤립, 빨간 꽃이 선명한 개양귀비, 겹겹의 꽃잎이 황홀한 작약처럼 한 송이만 피어도 그 존재감이 대단한 꽃들이 가득한 정원. 그 구석에 돋아난 소박하고 밋밋한 꽃 하나. 작은 이파리를 들고 "저기요, 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라고 외쳐도 아무도 나의 꽃을 발견하지 못할 것만 같았고, 우연히 누가 보더라도 금방 고개를 돌려버릴 것 같았다. 한마디로 자신 없고 부끄러웠다.
길을 걸으며 그전에는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꽃을 가까이 바라보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사람들이 씨를 뿌리고 가꾸지 않아도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생명의 신비가 움튼다. 멀리서 보면 비슷비슷한데 자세히 보니 다 달랐다. 너무 흔해서 하나도 특별한 것 없었던 민들레의 노란 꽃송이에 태양의 빛이 반짝거렸다. 어릴 때 꽃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우다 시들면 쉽게 버렸던 토끼풀꽃도 귀여워 다시는 꺽지 못할 것만 같았다. 땅에 붙어있는 것처럼 키 작은 제비꽃도 그 색과 자태가 우아했다.
이름을 아는 꽃이 많이 없어서 한동안 꽃 이름을 찾아주는 어플을 열심히도 썼다. 꽃망울이 잘아 잘 찍히지도 않은 사진을 찍어 검색하면 잡초로 보이는 꽃들에게도 다 이름이 있었다. 줄기 끝에 귀여운 꽃이 송송 돋아나 있고 하트 모양의 초록색 열매가 마치 잎처럼 달려있는 풀은 냉이였다. 그 생김새가 호기심을 자극해서 어릴 때 열매를 손톱으로 갈라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작디작은 씨앗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십 년 넘게 그저 어디서든 잘 자라는 들풀이라고만 인식해왔던 식물의 정체가 냉이된장국의 그 냉이였다니! 미리 알았다면 봄내음이 나는 아삭한 냉이를 입에 넣을 때마다 예쁜 꽃과 하트 모양의 열매를 떠올렸을 텐데.
끝이 톱니처럼 갈라져 있는 꽃잎이 꽃술이 난 중심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노란 꽃이 고들빼기라는 걸 알았을 때는 과장을 조금 보태 충격에 가까울 정도였다. 씁쓸한 맛의 고들빼기김치에서 양념을 거둬내면 그 뒤에 이렇게나 예쁜 꽃이 있다고? 아직도 산책을 하다 하늘하늘 노란 고들빼기꽃을 볼 때면 이 꽃이 내가 사랑하는 밥도둑의 원형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떠올리기가 어렵다. 냉이와 고들빼기에서 이미 많이 놀랐기에 씀바귀가 흙길 지천에, 심지어 보도블록 사이에서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유난을 떨지 않을 수 있었다. 씀바귀는 고들빼기와 비슷한 꽃을 피우는데 노란색 꽃술을 가진 고들빼기와는 다르게 꽃술이 거뭇거뭇하다. 달래는 아직 길에서 본 적은 없지만 나중에 우연히 만날 때를 대비해서 꽃 사진을 찾아봤다. 보라색이 희미하게 어린 작은 꽃들이 줄기 끝에서 한데 모여 마치 하나의 커다란 꽃송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달래꽃을 발견한다면 지나치지 않을 준비가 됐다.
자신 없고 부끄러운 마음을 작은 꽃에 비유한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들에게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직도 이름을 아는 들풀보다는 이름을 모르는 것들이 훨씬 더 많지만 꽃을 발견할 때마다 한 생각이 피어난다. 꽃들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줄기가 구부러져 꽃이 땅을 향해도 이파리가 상해 온전하지 못해도 주눅 들지 않는다. 크고 화려하든 작고 소박하든 한송이 한송이 모두 완전하다. 꽃에게서 모자람을 찾아내려는 시도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작년 한 해,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걸을 일이 많았다. 덕분에 발밑에 돋아난 작은 꽃들을 자주 만났다. 민들레와 제비꽃은 친구처럼 사이좋게 피어났고 씀바귀는 커다란 꽃 못지않게 꽃과 잎사귀를 울창하게 만들어냈다. 애기똥풀이 동글동글 순하게 생긴 노란색 꽃을 내밀고, 엉겅퀴도 보라색 꽃을 높게 피웠다. 너른 들판에 한데 모여 같이 피어있는 꽃들은 외롭지 않아 보여 좋았고, 어떻게 이런 곳에 피었나 싶을 정도로 좁은 벽 틈 사이에서 혼자 피어난 꽃은 그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들도 나를 따뜻하게 응시해줬다. 꽃과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주변의 공기가 평온해졌다. 그 작은 꽃 한 송이가 잊고 있던 삶의 환희 같아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럴 때면 강렬하게 꽃이 그리고 싶고 글이 쓰고 싶은 의욕이 일었고 힘없던 발걸음이 조금씩 다시 경쾌해졌다.
그동안 나의 꽃은 얼마나 커졌을까? 더 예뻐졌을까? 줄기가 약간 길어진 것 같기도 잎이 몇 장 더 돋아난 것 같기도 한데 꽃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루는 글감과 그림의 표현방식이 시간과 함께 조금씩 변해왔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평범하고 다정한 이야기임에는 변함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 사이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작은 꽃들을 발견하듯 누군가도 용케 나를 발견해 주었다는 것이다. 내 꽃을 보고 미소 지어주는 이들이 있었다. 그 따듯한 눈길이 햇빛이자 빗물이 되었다. 지금도 글이 막혀 그 속에서 길을 잃는 날이면 내 능력의 부족함에 의기소침해지고 싶지만 그럴 때면 실망하지 않고 들꽃을 떠올린다. 그들처럼 내가 피워내는 작은 꽃에도 나름의 빛이 깃들어 있기를. 그래서 마주하는 얼굴들에게 반짝임을 선사할 수 있기를. 그런 바람으로 꽃송이를 똑바로 들고 초록색 잎사귀를 부드럽게 펼친다.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꽃들 사이에서 기쁜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바람에 살랑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