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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고로호 Apr 19. 2020

선거의 추억

공무원 회상기 #6

제21대 총선이 끝났다. 투표장에서 손세정제로 소독하고 체온을 재고 비닐장갑을 받아 끼면서 이 시국에도 기어코 선거를 치러내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새벽부터 나와 일하고 있는 투표사무 종사자 모두의 수고가 고마웠다. 특히나 그들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방직 공무원의 고생이 눈에 훤히 보였다. 코로나 관련 업무에 선거까지 해내다니 정말 대단했다. 만약 지금 내가 현직이라면 이 모든 업무를 군말 없이 잘 해낼지 자신이 없다.


선거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소관이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주민센터에서 일하면서 선거업무까지 같이 하게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처음 치르면서 알았다. 실질적으로 투표가 이뤄지기 위한 준비작업과 투표 당일 투표소의 운영은 지방직 공무원의 차지다. 선거철이 되면 각 동주민센터마다 선거업무가 최대 현안이 된다. 직원마다 부과되는 업무의 경중은 차이가 나지만 예외는 없다. 모든 직원들이 선거에 투입된다. 일상 업무를 그대로 해내면서 선거업무도 진행하기 때문에 선거 준비가 시작되면 체력이 약한 나 같은 사람은 아이고 소리가 먼저 나온다. 한 달 이상의 잦은 야근과 주말출근 레이스를 거쳐 투표 당일이 되면 체력이 바닥난다.


지금도 선거를 생각하면 투표 당일 깜깜한 새벽에 출근하면서 느꼈던 피로와 열감, 근육통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다. 선거는 그만큼 부담스럽고 힘든 업무였다. 몸이 축나니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나라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행사에 공헌하고 있다는 직업적인 자부심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업무에 따른 수당이 나오긴 하지만 내겐 봄날 주말 가족과의 시간을 대신하기엔 적은 금액이었다. 애초에 구청과 동에서 선거업무를 해야 하는 구조적인 이유를 이해하면서도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올 것 같은 상황이 되면 억울함이 치솟았다.  국가직 공무원도 공무원인데 왜 선거업무는 지방직이 다 감당해야 하며 선관위는 뭘 하는건지 애꿎은 다른 공무원들을 원망한 적도 있다.






선거는 더 많은 국민이 더 편하게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모해왔다. 사전투표가 좋은 예다. 예전에는 미리 부재자투표 신청을 해야만 했고 신청기간을 놓치면 투표를 위해 선거 당일 주민등록 주소지까지 직접 갈 수밖에 없었다. 말만 들어도 번거롭다. 나는 이번에 사전투표를 했다. 이용과 절차가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사전투표를 애용할 예정이지만 고백하자면  2014년에 사전투표가 처음 생겼을 때 누구보다 침통했다. 본 투표 하루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틀이나 더 새벽에 나와서 온종일 투표소에서 일을 해야 한다니 누가 만든 제도냐며 한탄한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도 우리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도 선거를 하면서 힘든 점 중 하나였다. 평소라면 인터넷에 올라오는 공무원에 대한 댓글은 그냥 넘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넘치는 민원에 선거업무까지 하고 집에 돌아와 늦은 밤, ‘공무원 특히 주민센터 공무원들은 다 놀고 있다. 반은 잘라야 함’이란 댓글을 보면 기운이 빠졌다. 사람들은 왜 보이지 않는 수고를 헤아리지 않을까 슬퍼했다.


선거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뀐 것은 2017년 대선이었다. 전 국민이 염원하는 바른 변화를 위한 현장에 내가 참여한다는 자긍심이 생겼다. 이 선거가 내 공무원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예감까지 더해져 그제야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의 가치, 일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요즘 반가운 변화가 두 가지 있다. 사람들이 다양한 세계와 직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됐다. 덕분에 한 직업이 단편적인 사실과 고정관념으로만 평가되는 일이 줄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의료진들과 공무원이 고생하고 있다는 뉴스도 많이 보였다. 객관적으로 공무원들이 이런이런 다양한 일을 하고 있으니 수고가 많다는 댓글을 볼 때면 더 이상 공무원이 아님에도 울컥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 댓글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 싶겠지만 내 직업에 대한 긍정적인 자부심과 타인의 인정은 확실히 힘이 된다. 투표 독려를 하는 분위기와 높아진 투표율도 바람직하다. 열심히 전 국민을 주인공으로 모시는 나라 최대의 잔치를 준비했는데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주면 좋겠다.


선거가 끝나고 하루종일 도배가 되던 선거관련 뉴스가 서서히 줄어가고 있다. 공무원들도 언제 선거가 있었냐는 듯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당면업무로 돌아갔다.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본인 스스로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린 개개인의 수고를 나는 헤아려본다.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에 당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그 고생과 노력을 누군가는 알아주고 감사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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