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가운을 벗는 순간, 용기가 찾아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며, 작가 밀란 쿤데라가 묘사하고 비유한 장면에서 내가 느낀 점을 기록해본다.
이 책의 도입 부분은 무거운 주제로 시작한다.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으로.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표현도 어렵고, 단편마다 짧게 나뉘어 있지만, 쉽게 읽히지 않았다. 하지만 어렵게 읽으려 하면 오히려 머릿속이 꼬이고 부담스러울 것 같아, 나는 ‘몰라도 그냥 가볍게 술술 읽자’라고 마음을 다잡고 읽었다.
독서모임을 통해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118페이지 첫 줄에서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된 문장을 발견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밀란 쿤데라의 해석과 상관없이 나만의 느낌을 기록할 수 있었다. 정답은 없기에, 나의 생각과 사유를 자유롭게 펼쳐본다.
2부 ‘영혼과 육체’에서, 테레자에게 카메라는 단순한 사진기가 아니라 관찰자의 눈이자 동시에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베일 같은 역할을 한다. 사비나가 가운을 벗기로 결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카메라가 가진 이중적인 의미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누군가를 관찰하는 눈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숨기는 장치. ‘자신의 얼굴을 가린다’는 표현은 단순히 외모가 아니라, 세상에 보여주는 모습과 감추고 싶은 내면, 즉 우리의 페르소나와 연결된다.
가운을 벗는다는 것은 단순히 옷을 벗는 일이 아니다. 진짜 자아를 마주하는 용기다. 마음속 깊이 묻어둔 상처, 말하지 못한 비밀, 감춰둔 이야기들까지 들여다보고 받아들이는 용기
누구에게나 마음속 ‘가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을 벗는 순간, 무겁게 눌러왔던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이 생긴다. 물론 그 힘을 유지하려면 다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고,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닫는다.
밀란 쿤데라는 이 장면을 통해 인간 내면의 복잡함, 용기, 자기 객관화 사이의 긴장감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비나가 가운을 벗는 순간, 우리도 숨겨둔 내 마음과 마주할 용기를 떠올리게 된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글쓰기 모임에서 처음 글을 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내 상처를 글로 풀어내고, 남들 앞에서 발표해야 했던 순간들. 사비나가 가운을 벗기로 결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나도 내 마음속 깊은 흔적과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글로 꺼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눈물로 써 내려간 그 순간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때 깨달았다. 글을 쓰는 일, 마음을 마주하는 일은 모두 용기 있는 순간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가운을 벗는 순간, 나는 나를 조금 더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가운을 벗는 순간, 용기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