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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할머니

할머니의 마지막 유산

by 원혜경


외할머니께서 얼마 전, 백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병이 있었던 것도, 어디가 크게 아프셨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세월이 다해, 자연스럽게 삶의 문을 닫으신 것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곡기를 잘 드시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서 전해 들었다.
억지로 병원에 가거나 요양원에 머무르지 않으셨다. 늘 계시던 집에서, 편안히 주무시듯 떠나셨다.


나는 작년 여름, 마지막으로 뵌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제대로 서지 못하시고, 방바닥을 짚으며 기어 다니시던 모습.

그 연세에도 할머니는 손자와 손녀들을 알아 보시고 미소를 띄며 할머니의 특유의 웃음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평생 일만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모은 돈도 당신을 위해 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셨다.


어릴 적 나는 방학이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댁에서 살다시피 했다. 할머니와는 유난히 정이 깊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음식 손맛만큼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할머니의 손두부, 콩국수, 총각무.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삼촌과 이모, 자식들에게 그 어떤 부담도 남기지 않으셨다. 그 누구의 손길도 귀찮게 하지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당신의 몸과 마음이 정한 이별의 순간을 받아들이셨다.


할머니의 죽음은 마치 단식존엄사처럼 느껴졌다. 삶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방식으로
‘떠남’을 준비하신 것이었다.


그 마지막 선택 속에는 긴 세월을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평온함이 있었다.

자식들은 눈물로 배웠다. 삶의 끝에도 품격이 있고, 죽음 또한 사랑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을.


할머니는 우리에게 어떤 재산도 남기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을 남기셨다.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답게 머무는 품격. 그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유산이었다.

안녕, 할머니.

그리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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