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내가 차린 식탁에서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은 나의 행복입니다.
"밥 먹자. 말고는 할 말이 없니?" "내가 밥으로 보이냐?" '삼식이' 등 밥과 관련된 비하하는 말들이 굉장히 많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방송을 보면 음식 먹는 것에 대한 방송이 넘쳐납니다. 내가 음식을 만드는 것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다가도 다른 사람이 만드는 맛있는 음식을 보거나 먹는 일에는 열광을 하면서 본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맛있는 식사를 한다는 것. 이건 누군가는 정성 들여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 만드는 사람이 내가 되기는 싫다는 것일까요?
저는 언제부터 아침밥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저는 어려서부터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편식이 심했습니다. 어떤 음식은 냄새가 싫고, 또 어떤 음식은 비주얼이 징그러워서 싫고, 이유도 다양하게 편식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엄마는 제가 먹고 싶다는 음식은 언제든 만들어주셨습니다. 키는 큰데 잘 먹지 않으니까 몸이 너무 마르고 빈혈도 심했기 때문입니다.
또 밖에 나가서 안 먹을걸 아니까, 대학 다닐 때도 아침밥을 안 먹으면 학교를 가지 말라고 협박을 할 정도로 먹는 것을 챙기셨습니다. 그렇게 아침밥이라도 먹여야 안심이 되셨던 것 같습니다.
이랬던 저였지만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제가 엄마가 되고 나니, 많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아직도 못 먹는 음식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내가 먹지 못하는 음식도 모두 만들어줍니다.
징그러워서 만지지도 못했던 고기와 생선을 이젠 거침없이 다루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어른들이 제 자식의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 보아도 행복하다. 하시던 말씀이 정말 공감이 됩니다.
아이들이 소풍을 간다 하면 도시락 쌀 생산에 제가 더 신이 납니다.
전날 장보기 할 때부터 소꿉놀이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이것저것 사면서 행복합니다.
김을 반으로 잘라서 꼬마김밥을 싸고 작은 도시락에 가지런히 넣고 들러붙지 않게 사이사이 통깨를 뿌려서 완성합니다. 또 한통은 갖은 야채와 고기를 잘게 다져서 볶은 후 새로 지은 밥과 버무려서 방울토마토 사이즈로 동그랗게 만든 후 계란물을 발라서 습식 빵가루를 입혀서 튀겨줍니다. 이렇게 라이스 크로켓을 완성하고요.
과일을 종류별로 작게 잘라서 과일컵을 만들어줍니다. 또 빠질 수 없는 간식 통에는 평소에 아이가 좋아하는 쿠키와 젤리, 초콜릿, 과일주스, 물 등을 넣어줍니다.
"도시락에 음식 많이 쌌으니까 친구들이랑 나눠먹고, 재밌게 놀고 와요~." 하면서 스스로 너무 행복해했습니다.
아들 둘을 키우면서 강사일을 하면서 너무나 정신없던 시절이었지만, 아이들과의 소소한 추억들은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엄마, 친구들이랑 선생님께서 엄마 도시락 너무 이쁘고 맛있대." 하는 이야기를 전해주면 또 한 번 행복해집니다.
큰아이가 중학생 때는 따로 공부하러 다니는 곳이 있어서 저녁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었는데, 그때도 내가 영양사가 된 듯이 영양소를 따져가면서 일주일 도시락 표를 만들어서 싸줬던 기억이 납니다.
보온도시락을 싸야 하니까 그릇에 넣을 수 있는 음식수에 제약이 있었지만, 매일 다른 반찬을 싸주는 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제일 위칸 반찬통에는 작은 편지를 써서 함께 넣어줬는데, 집에 돌아와서 도시락을 씻으려고 통을 꺼내보면 내 편지 밑에 아이가 답글을 적어주었는데 그 글을 일고 싶은 마음에 도시락 설거지 마저 행복했습니다.
참 행복한 엄마로 살았던 것 같아요.
사실 본격적으로 가족들의 아침밥에 진심이 생긴 데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습니다. 학교에 가서 엄마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어떤 선배 어머님께서 본인은 아이들 아침밥에 목숨을 건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무슨 말씀인지 자세히 들어보니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점심과 저녁을 학교 급식으로 먹기 때문에 공부하는 고등학생 자녀를 위해서 엄마가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침이라도 따뜻하게 먹이는 게 엄마로서 자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전부라고요.
듣고 보니 저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그냥 몸에 영 앙소를 넣는다.'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까요.
누군가의 좋은 일을 축하해줄 일이 있거나, 사과해야 할 일이 있거나, 부탁할 일이 있을 때, 함께 식사하는 일이 많죠.
또 여행 중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이 배가되는 걸 느끼고 말이죠.
가정에서도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명절에 함께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이렇게 식사를 함께 한다 건 서로에게 좋은 감정,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는데 아이들과 아침식사를 포기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식사하면서 아이가 학교생활에서 느꼈던 이야기를 하면서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을 꺼내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 요즘 우리 아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이렇게 아침식사를 준비한 엄마에게 선물을 하듯이, 아이들은 내가 차린 음식을 맛있게 잘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채워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어져온 저희 가족의 식생활은 우리만의 시그니쳐를 만들면서 재미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초겨울이 되면 김장을 하는데 그렇게 요리 고수가 아닌 저는 최고의 김장재료를 구입하고 장인들의 레시피를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들어왔습니다.
그렇게 20여 년 동안 한해 40-50포기의 김장을 하다 보니 우리 가족에게 잘 맞는 레시피를 찾게 되었고, 큰아들은 쪽파 까는 달인이 되었고 작은 아들은 무거운 것 옮겨주고 이것저것 도와줍니다. 나머지 일과 양념을 버무리고 나면 저녁 시간이 되죠. 가족들은 흩어졌다 다시모여서 배추에 속을 넣기 시작합니다. 저는 완성된 김장을 통에 담고 수육을 삶아서 함께한 가족들과 정말 맛있게 먹습니다.
끝이 아니죠. 남편은 김장에 사용한 모든 큰 그릇들을 닦아주고 바닥깔개도 닦아 말리고 거실 바닥을 청소해줍니다. 마지막으로 따로 통에 담아둔 김장김치를 양가 어른들께 드리는 일까지 마무리합니다.
힘든 일이지만, 이렇게 함께 해서 그런지 1년 내내 김장김치를 먹으면서 맛있다를 연발하면서 만족해하고 스스로 칭찬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것 하나하나가 가족화합과 행복의 초석이 된다는 걸 느낍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성장해서 더더욱 아침밥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모두 너무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들거든요.
가족들이 아침에 입맛이 없다거나 일어나기 힘들다 하다가도 제가 "아침식사하러 모두 나오세요." 하면 몸을 일으켜서 식탁으로 모이는 걸 보면 저는 그냥 그냥 너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