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미아 될뻔했던
"비행기표 예매했다."
이렇게 한마디 던지고 남편은 일사천리로 여행 준비를 끝마쳤다.
그동안 멀리 여행하는 걸 꺼려왔던 와이프를 더 이상 얼르고 달래는 걸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냥 혼자 저질러버린 것이다
나는 사실 굉장히 외향적이고 밖으로 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공부하던 중고교 시절에는 수선스럽게 다니고 싶지 않았다. 큰아이가 특별 입시를 중학교 때부터 준비했기 때문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스트레스 쌓이지 않을 정도만 움직였다.
그런데 큰아이가 대학을 들어가고 한 고개 넘고 나니, 남편은 가족 해외여행을 한번 다녀오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일하고 애들 키우느라 너무 바쁘기도 했고 남편도 직업 업무상 여러 날을 쉴 수가 없어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해외여행을 가자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인지 해외까지 여행 가는 건 꺼려져서 미루고 있었다.
그동안 너무 가열하게 살아왔으니까 숨좀 고르고 오자는 게 남편 주장이었다.
투덜투덜 짜증을 내면서 거부를 하는 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남편은 판단했나 보다.
여행가방을 싸면서도 나는 심드렁했고 남편은 비행기 예매, 호텔 예약이나 동선 등 큰 일은 본인 이하고 애들한테는 각자 가보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을 알아보고 말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저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면서 다른 부담은 주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가족의 첫 번째 해외여행, 바로 일본 도쿄 여행이 시작되었다.
헉!! 이런!! 그렇게 심드렁하던 내 마음이 비행기를 타는 순간 흥분으로 바뀌었다. 노래 부르고, 사진 찍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좋아했다.
나리타공항에 도착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너무 신이 났다. 일본말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밖에 모르지만 그냥 신이 났다. 다행히도 큰아들은 통역이 가능했고 남편이랑 작은 아들도 일본어 듣는 건 가능해서 나는 졸졸 따라만 다니면 되었다.
에어비엔비로 숙소를 예약했는데 숙소가 도쿄 중심에서 먼 곳이어서 충분이 하루를 여행하고 밤에 들어가서 잠만 자자. 하는 계획으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우선 번화하다는 신주쿠에 가서 유명하다는 라멘집을 찾아서 식사를 하고, 도쿄타워도 가보고 자유롭게 도쿄의 거리를 누비면서 우리나라와 다른 점들을 비교하면서 신나게 다녔다.
밤 12시가 넘어서 숙소가 예약되어있는 오기쿠보 역에 도착했다. 예약할 때 사이트에서 받은 지도를 보고 찾아갔는데 그 좌표에 그런 아파트가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집주인과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열쇠 위치도 알려줬다는데 아파트를 찾을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운 건 내가 여행을 하면서 가족 휴대폰 중 어느 하나도 로밍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고 포켓와이파이만 대여해서 왔다는 사실이다.
가족이 모두 함께 여행할 것이기 때문에 데이터만 사용 가능하다면, 전화는 필요 없겠다 생각했다.
전화가 없으니 남편은 메일을 보냈고,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인근에 편의점에 들어가서 지도를 보여주면서 아파트 위치가 이곳이 맞는지 물어보러 갔다. 나는 그냥 멀뚱멀뚱 서있을 뿐.
아들들이 편의점 몇 곳을 다녔지만 모르겠다는 답변을 받았고 집주인은 주무시는지 메일에 답장이 없었다. 새벽 1시가 되어가는데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나와 남편은 인근에 호텔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큰아들이 길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할아버지께 양해를 구하면서 전화 한번 써도 되냐고 여쭈어 보고 있는 거다.
뭐라고 대화를 하는데 나는 무슨 얘기하는지 몰라서 물어봤더니 아들이 잠깐만 기다려보시라고 하면서 할아버지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다행히 할아버지께서 직접 전화를 해주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집주인과 통화를 마친 할아버지께서는 위치가 이쪽이 아니라면서 본인이 어딘지 아니까 따라오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타시던 자전거를 끌고 가시면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는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한참을 걸어서 작은 아파트에 도착했고, 할아버지는 올라가서 열쇠로 문 열고 정확한지 확인할 동안 아래서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한밤중에 우리가 갈 곳이 없을까 봐 걱정이 되신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고마우신지, 아파트에 올라가니까 문이 잘 열렸고 집주인이 우리에게 써둔 쪽지도 발견했다. 아들이 내려가서 집을 맞게 찾았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한 후에야 할아버지는 안심하시고 돌아가셨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나는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는데 아들이 잠시 올라오시라니까, 늦었다고 쉬라고 하시면서 본인은 괜찮으니까 여행 잘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가방을 풀어놓고 씻는 동안 아들이 숙소 찾아오는 길에 할아버지와 나눈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행을 온 것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고, 할아버지는 밤에 자전거 타고 어디 가시는 길이냐고 여쭈었더니, 이 동네에서 중국 요릿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일이 끝나면 정리하고 씻고 나서 동네를 자전거 타고 산책을 하신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남편은 아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인근에 중국집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찾을 수가 없었다고 그냥 들어왔다.
그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다시 아들을 데리고 중국집을 찾으러 나갔다.
어젯밤엔 어두워서 찾을 수가 없었다며 밝을 때 찾으면 보일 것 같다고.
다행히 동네를 돌다 중국집을 찾았고 어젯밤에 그 할아버지를 만났다고 한다.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 말씀을 드리고 영업시간을 여쭤보니까 가게 오픈은 11시에 하신다고 하셨단다.
우리는 오전에 좀 씻고 쉬고 11시 맞춰서 할아버지 중국집으로 향했다.
그냥은 서울로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음식이라도 팔아드리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아이고야. 웬걸 오히려 우리가 서비스 음식을 더 얻어먹고 왔다. 작은 동네 음식점이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요릿집은 아니고 일본식 중국 요릿집이었다.
할아버지께서 메인 요리사이시고 할머니와 딸 사위랑 함께 하고 계셨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사진 찍고 이야기하는데 죄송할 지경이었다. 명함을 한 장 주셔서 알아보았더니 할아버지께서는 일본 NHK 방송국 요리경연대회 수상자셨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서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졌나 했더니, 아니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우리가 대접받은 것이었다.
여행 첫날부터 국제 미아가 되나. 놀랐었는데 좋은 분을 만나서 잘 안내받고 맛있는 음식도 먹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그 이후로도 도쿄에 갈 때마다 일부러 오기쿠보 역으로 가서 할아버지를 뵙고 온다. 한국의 유명한 홍삼과 김세트, 마스크팩세트 등을 사서 선물로 드리고, 정말 감사했다고 또 인사드린다.
나는 그때 그 여행을 생각하면 감사한 게 더 있다.
그렇게 싫다고 투덜거리는 나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휴식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억지로라도 여행을 감행했던 남편의 결정이 너무 고마웠다. 그때 여행을 다녀와서 나는 너무나 힐링이 되었고 지금도 그 여행사진을 보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난다.
내 마음속에 조금의 여유도 없던, 아니 여유를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는 나에게 쉼표를 알게 해 준 남편. 너무 고마워.
또 우리 아들들. 어쩜 그렇게 듬직할까요?
처음 해외여행이라서 실수 연발이었던 아빠, 엄마에게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잘 따라와 주고, 당황스러운 순간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현명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너무 반해버렸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는 가족 모두 너무 스타일이 달라서 함께 여행 안 가고 각자 맘에 맞는 친구들과 여행 다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우리 가족의 마음을 볼 수 있는 행복한 첫 해외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