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by 여지나

물 밑


그보다 저 아래 깊은 곳

그 안에 내가 있다.


퇴적물과 원석이 뭉쳐

지저분하게 늘어져 있다.

아름답고 싶어서 포기하지 못한 채

더러워지고 싶어도 용기 내지 못한 채


너는 늪 바닥까지 닿을 듯

발을 밀어 넣었다.


늪 한가운데까지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사람은

너 하나뿐이라

밑바닥에 체온을 모아 덥히고

세월이 묻은 잡초들을 지르밟았다.


몇 개만 남겨 두었다.

나라는 걸 네가 알아볼 수 있게

나라는 걸 내가 기억할 수 있게


너는 내가 나인 걸 알고

얼마 남지 않은 내 잡초들을 쓰다듬었다.


나는 처음으로 풀을 부끄럽지 않게 내밀었다.


끈적이는 발을 도로 빼내어

너는 자꾸만 제집으로 돌아갔다.


그게 당연한데도

돌고 돌아 제자리만 덥혔다.

전부 잊어버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