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의
어젯밤 아홉 시가 되어갈 때쯤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정월대보름날에 맞춘 개기월식에 관한 기사와 직접 찍은 붉은 달 사진이었다. 월식도 월식이었지만 '36년 만의'라는 수식어에 꽂혀 남편을 불렀다.
"여보! 개기월식이래! 보러 갈래?"
우주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금세 좋다며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섰다. 아이의 머리를 말리고 있던 나는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싶어 혼자 보러 다녀오라고 말해놓고는, 1분도 지나지 않아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도 패딩 입고 모자 쓰고 붉은 달 보러 갈까?"
아이는 약간 귀찮은 마음과 궁금한 마음이 섞인 눈으로 그러자고 했다. 아홉 시면 끝난다는데 시간이 없었다. 급한 대로 남편의 두툼한 맨투맨만 잠옷 위로 걸쳐 입고, 아이는 모자와 털이 달린 롱패딩을 입혀 나갔다. 먼저 나가 있던 남편은 달이 없다면서도 계속 달을 찾는 기색이었다. 1층 현관 뒤 쪽에서 보는 하늘은 거짓말 조금 보태 하늘 반, 아파트 반이다. 뒤늦게 나온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이쪽으로 와서 봐봐. 아파트 바로 위쪽."
아파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그 뒤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달이 내 쪽으로 멀찍이 물러서자 잘 보였나 보다. 남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네, 신기하다 진짜. 이게 36년 만이라고?"
"응, 그러면 우리 태어나서 처음 본 거네."
분명 월식은 본 것 같은데 36년 만이라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달은 지구의 그림자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다. 달만 보고 있으면 내가 지구 밖 우주에 서 있는 듯 어색해서 좋았다. 처음 본 게 아닌데도 처음 본 것 같은 붉은 달은 오른쪽 가장자리가 초승달 모양으로 원래의 빛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몇 장 사진을 찍다 마지막엔 달을 바라보는 남편의 까치집 진 뒤통수도 함께 찍어주었다. 지금만큼은 달이 붉든 푸르든 크게 관심 없는 아이보다, 남편의 행복에 일조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집으로 돌아가 마저 머리를 바짝 말려주며 뻗친 머리끝까지 살짝 정리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께서 네가 좋아해서 받아왔다며 오곡밥을 가져다주셨다. 나는 오곡밥을 좋아한다. 정월대보름에 먹는 건나물과 함께 먹는 풀 맛, 구수한 맛, 그리고 넉넉지 않은 환경에도 정월대보름과 크리스마스를 꼭 챙겨주려는 엄마를.
무엇보다 나물이 없는 오곡밥은 맛이 없다. 약간 귀찮았지만 또 고마웠다. 보름날에 맞게 엄마가 챙겨주는 오곡밥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오랜만이었다.
정월대보름과 개기월식이라니. 달이라는 건 참 오묘하다. 아무것도 아닌 매일에 아름다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