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가 없는 삶이 좋았다. 그립다고 생각한 적도 거의 없었다. 있는 것보단 없는 것이 안전하고 행복할 확률이 훨씬 컸다. 내 우물 안에서는 그랬다.
그럭저럭 살며 생각에 확신을 가질 때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미성년의 나는 경험하지 못한 평범함이 우리 집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남편은 한낮의 공원에서 아이에게 목말을 태우고 걸었고 그 뒷모습은 연녹색의 나무와 잔디와 함께 어우러졌다. 살랑이는 바람에 그의 외투가 작게 펄럭였고 아이의 모자가 날아갔다. 그런 완벽은 낯설고 어색했다. 순간순간마다 감격했고 계속될 거라고 믿기 어려웠다. 눈앞의 뒷모습이 흔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자, 몸속 어딘가 손톱만큼 아린 느낌이 났다.
그 느낌이 날 때마다 메모를 해 두었다. 어느 날은 느닷없이 '아버지'로 시작하는 문장이 스쳤다. 손가락이 휴대폰의 작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대로 두었더니 이상한 시가 쓰였다. 그리고 마무리를 하기도 전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 당황스러웠다.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서러움과 원망, 최소한의 자기 연민이 섞인 원초적인 눈물이었을까. 사람의 무의식은 수십 년간이나 자신을 속일 수 있었다. 우물이 자꾸만 커지는 게 가끔 버겁다.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인공지능에게 요청했다. 완성된 그림 때문에 한 번 더 울 뻔했다. 그림 속 늙은 아버지가 노란 조명 아래 옛날 사진을 보고 있는 모습은 거짓말 같았다.
다시 생각해도 그가 없어진 게 나았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내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궁금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