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여덟ㅡ내 마음에 물든 풍경
쪽문으로 사계가 펼쳐지고
by stellaㅡ별꽃 Aug 27. 2020
photo by 김재문
희옥이네 밭이 보이는 사랑채,
앉은뱅이책상 너머
쪽문엔 사계의 풍경이
펼쳐진다.
창공을 차고 오르는 종달새의
지저귐이 바빠지고,
씨감자를 뿌리는 이웃집 아저씨의 얼굴이
새카매질 즈음 그 쪽문으로
봄햇살이 기운다.
초가집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수물이
'찰그랑 찰그랑' 세숫대야를 두드리면
라디오에선 팬플릇의 청아한 소리로
여름비를 쓸쓸히 흘려보낸다.
둥둥 걷어붙인 아이들 바지가
서둘러 늘어지고,
반소매 옷이 길어지면
여름은 훌렁 재주를 넘는다.
여름이 떠난 자리엔
새하얀 감꽃이 수북이 떨어진다.
동네 여자 아이들 바구니에 감나무 꽃이
가득 차고 평상에 온 동네 사람들이
둘러앉는다.
어른들이 어금니를 '꽉' 물어 끊어 준
명주실에 꽃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지천으로 흐드러진 들꽃을 꺾어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쓴다.
들꽃을 꺾어 좋아하는 여자아이
앞에 던져놓고 도망가는 소년도
더러 있다.
한낮을 거두어들인 서편하늘에
붉은 노을이 물들면
아이들 얼굴도 같이 붉어진다.
뜻 모를 울렁거림이 가슴 언저리를 치받고
왠지 모를 슬픈 감정이 밀려오니
펜 끝엔 유치한 시가 술술 쏟아진다.
사춘기가 쳐들어 오는 중이다.
photo by 별꽃아버지 어깨 위에 엽총이 매달리고
사냥개가 뛰기 시작하면
영락없는 겨울이었다.
초가집 처마 밑으로 참새들이 숨고
이따금 구렁이가 그 틈을 비집기도 한다.
일찍 찾아오는 산간벽지의 밤은 유난히 까맸고,
촘촘히 박힌 별들은 푸른빛이 되어
쏟아져 내린다.
그렇게 몇 번의 사계를 보내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쪽문엔 빚장이 걸렸다.
희옥이네 뽕나무 밭이 푸르러질 즈음이면
난 이상하게 몸살이 찾아왔다.
쪽문 너머 뽕나무 밭은 한 번도
본 적도, 볼 수도 없었던 바다에 대한
동경이었고, 미지의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했다.
요즘 매일 듣는 예민의
'어느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는
꿈을 꾸는 것 같은 괴물 같은 시절을
피해 유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의 안내자 같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쪽문이 보이고
감정은 고요해지며, 종종 기억은
유년으로 돌아간다.
추억을 자주 펼쳐보는 요즘이다.
많은 추억 속엔 자신을 지키는
강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힘내시고 잘 이겨내세요!
photo by 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