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을 베고 늘어진 아이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어지간히 아파서내색조차 안 하는 아이다. 몰아쉬는 한 모금의 숨과 신음소리는 생의 경계를 넘는 듯했다.
응급실에 다녀왔지만 회복 불가능의 질병이란 현실에 가족들의 기도는 메아리처럼 웅웅 거릴 뿐이다. 최근 넉 달 동안 아이는 병마와 싸우고 가족들은 간병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수시로 멀어졌다 돌아오는 아이의 천국 여행은 깃털보다 가볍거나 쇳덩이보다 무거웠고生과 死의 고통스러운 싸움이었다.
변화된 가족들의 일상, 나는 퇴근이 빨라졌고 주말이면 카페로 향하던 발걸음이 아이의 간병으로 집중되었다.물 한 모금 밥 알 한 개라도 더 먹여보려 매일 다른 메뉴의 간식을 만들었다. 어제 먹던 것도 하루 지나면 안 먹는 아이.
걸러내지 못하는 노폐물이 몸속에 쌓이니 발생된 암모니아 가스의 역한 냄새 때문에 식욕부진으로 시달리는 것이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가도 손바닥처럼 작은 아이의 삶에 대한 의지에 가족들은 다시 힘을 냈다.
피하수액 맞고 오빠 품에 안겨 있는 여울이
밤샘 작업을 하고퉁퉁 부은 얼굴로 여울이를 유모차에 태워 공원을 한 바퀴 돌고,소고기를 사서 아이에게 먹이고,아침저녁 약 먹이고, 등에 피하 수액 맞추는프리랜서 막내. 힘은 들지만 여울이 떠난 후 가슴 아플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단다.
식욕이 아예 없는 아이에게 레날을 갈아서 강 급한 날엔 온 집안에토와 설사의 흔적이 남겨졌다.트라우마로 남겨진 피하 수액의 기억에 그냥 안으려 다가가기만 해도 울부짖는 아이.그런 아이에게 수액 바늘을 꽂는 게 옳은 건지 갈등하며, 행여 한 모금의 숨이 수액 부족으로바람이 되어 날아갈까 다시 마음을 다잡는 막내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다 사 먹이고 치료를 위해 말없이 깊은 사랑으로 울타리가 되어주던 큰아이의 얼굴도 근심으로 가득 찼다.
피하 수액 맞기 위해 준비를 하는 여울이
입원시켜정맥으로 수액을 맞추자는 의사와 입원이 의미가 없으니 가족들 품에서 편안히 떠날 수 있게 호스피스로 방향을 전환하라는 의사. 무엇이 옳은 것일까. 어떤 방법을 선택해도 가족들에게 남겨질 후회와 슬픔은 지우기 힘들 테지만 그래도 최선은 무엇인지 깊은 고뇌에 잠겼다.
아이의 고통과 눈물에 수액을 멈추고 약도 멈추어 보는 날엔 아이는 표가 날 정도로 급하게 달라졌다. 2.4kg의 체중이 1.7kg으로 줄어드니 사람으로 치면 50kg 체중이 25kg이 된 것과 같았다. 고개를 땅에 박고 들지못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아이를 밤새 안고 뜬눈으로 지새우기를 몇 번.
여울이는 공주님! 날마다 하루 세끼 이렇게 먹어요
투병기간 동안 케어하는 방법을 가족들은 스스로 체득했다. 여울이가 편안하게 수액을 맞을 수 있는 자세를 알아냈고, 신부전 환자용 사료를 스스로 먹게 하는 방법도 체득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료를 거부하는 아이 허리를 잡고 밥그릇을 앞에 두면 갑자기 뚝딱 먹어치운다.
하지만 행여 그 방법이 아이에 대한 상처가 될 것 같아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KD란 사료를 전자레인지에 14초 정도 데워우선 입에 살짝 바른 후 손바닥에 올려 두면 딱 먹을 만큼만 먹고 휙 돌아선다. 털은 반드르르 윤기가 흐르고 콧잔등도 촉촉해졌다. 체중도 200그램이나 늘었다. 집안이 떠나가라 짖는 건 다반사고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상냥함과 애교에 가족들은 눈물을 쏟았다.
어쩌면 임상 실험과도 비슷했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투병하는 아이를 대하는 가족의 진짜 사랑이 무언지 알게 되었고, 정에 휩쓸려 당장 배고픔을 해결해 주려 입에 물렸던 달콤한 유혹을 거두었다. 강제 급여 후유증으로 설사와 토, 혈압상승이 아이의 생사를쥐고 흔들 즈음 아이는 가족들의 마음이 고마웠는지, 아님 그거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밤을 지새우며 만들어 먹였던 간식 대신 환자용 사료와 일반사료를 번갈아 먹인다. 아이가 먹고 탈이 나는 음식도 파악이 되어, 이젠 오직 신부전 환자용 사료와 피하 수액 그리고 가끔 양배추 데친 것과 날배춧잎을 간식으로 먹인다. 이피키틴이란 치료보조제도 약과 병행하여 먹이고 미용도 집에서 해주고 있다.
치료비에 대한 불신으로 병원을 두 번 옮겼다 처음 병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주치의 선생님의 진심을 어느 순간 깨닫고 참 미안했고 민망했고 고마웠다. 아주 사소한 것조차 카톡으로 문의를 하면 직접 전화를 걸어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상세한 상담과 더불어 가족 같은 마음을 나누어 준다.
여울이의 산책이 시작되었다. 새벽 5시면 방문을 긁고 끙끙거리며 엄마를 깨우던 평범한 일상도 다시시작되었다.잔여수명 두 달을 예고했던 그때에 비하면 요즘은 모든 것이 기적처럼 여겨지고 매 순간이 감사할 뿐이다.
사람으로 치면 백 살이 넘었다는 아이. 의사들도 감동한 여울이의 투병과 가족들의 사랑, 희망은 어떠한 순간에도 잡고 있어야 한다. 마음과 행동과 물질이현재 처한 상태에서 스스로 최선 그 이상이라 여겨졌을 때 후회가 없을 거란 나의 믿음이고 신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