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승용차로 마중을 나온 모하메드의 첫인상은 순박했다. 손등에 낀 때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그 손등으로 업혔다. 차창 밖에서 밀려오는 햇살은 감실거렸고 거리마다 질레바를 입은 남자들과 얼굴 전체를 자유롭게 드러낸 채 히잡을 쓴 여인들, 해리포터 영화의 장면들과 유사한 풍경들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다.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찾아보기 힘든 느낌의 풍경들은 심장에 압박이 느껴질 정도로 여행자의 감성을 흔든다.
영화 제목으로도 등장했던 로맨틱한 사랑의 도시로 각인된 '카사블랑카'의 민낯을 보는 순간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로맨틱은커녕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 풍경들. 모로코 사람들은 이곳을 작은 인디아라 부른다. 벙벙하게 바람을 불어넣은 비닐봉지를 코에 대고 눈자위를 허옇게 드러낸 소년, 마약 하는 중이라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경찰은 일말의 관심도 없다.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곡예를 하는 남자 (뒷자리엔 갓난 아기와 아내가 타고 있다)
차도엔 차들이 뒤엉켜 신호등 따위엔 관심도 없고 지그재그로 끼어들고 밀어붙이고, 창문을 열고 운전자끼리 서로 크레이지를 외친다. 10초 간격으로 울리는 경적, 빨간 불에도 성큼성큼 차도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들, 그 틈을 비집고 차창에 부딪힐 듯 다가와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사람들. 누구의 잘못도 없는 무질서함 속에서 그들은 특이하게도 창문을 열고 하나 같이 상대를 향해 양손을 어깨 높이로 올리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비틀며 눈썹을 치올린다.
어딘지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 입술을 오른쪽 끝으로 끌어당기며 ‘왜? 난 아무 잘못이 없어. 난 정당해. 뭐가?’라는 제스처를 취한다.그 아수라장 차도 사이를 당나귀와 말이 헤치며 다니고, 운전자와 보행자는 상대를 향해 목청 높여 'Crazy'를 외친다. 지옥이 따로 없다.
사람들이 웅성대며 밀집해 있으면 영락없는 사고 현장이다.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본다. 사고자 주변엔 경찰이나 앰뷸런스보다 구경꾼들이 더 많다.
빈민가다. 차만 서면 애고 어른이고 차 문을 두드리며 손을 내미는 통에 창문을 열 엄두를 못 낸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찰거머리 같은 눈빛이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일해서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구걸하며 사는 사람들이 지겹다며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숙소로 가는 길은좀 어이가 없었다. 잔뜩 부푼 마음의 바람 빠지는 소리. 전쟁의 잔해처럼 피폐한 풍경들, 떠돌이 개는 뼈만 앙상하다. 허름한 아파트 앞엔 몇 년은 빨지 않았을 것 같은 꼬질한 질레바를 입은 노년의 남자가 다리를 절룩이며 주차를 상관한다. ‘Watch Man’이다. 주차해야 하는 모든 구역엔 그들이 상주한다. 주차하는 걸 봐주고 모로코 화폐로 2 디르함을 받는다.
토사물이 넘쳐나고 비굴한 표정의 고양이들이 활보하는 음습한 거리, 아파트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현관문은 육중한 철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캐리어를 끌고 20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나이 든 남자가 일행들의 짐을 나른다. 우리나라 돈으로 2~300원 정도 되는 돈을 그의 손에 들려준다. 그나마 5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수 있어 다행이다. 낡은 장롱처럼 생긴 엘리베이터는 ‘삐걱 쿵! 끽!’ 불안한 소리와 육중한 흔들림을 껴안고 5층에 정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