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 필요 없어요. 아이한테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마음 아프시겠지만 호스피스 방향으로 전환하세요."
정직하고 병원비도 합리적이라는 블로그 리뷰를 보고 바꾼 동물병원 수의사의 첫마디는 냉철했다.실낱같은 희망을 단숨에 부수어버렸다.
말기신부전증 진단을 받은 반려견이 먹을 수 있는 사료나 간식은 제한이 너무 많고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전혀 조미되지 않은 저염식식단에 맛있는 재료는 다 빼버린 음식 같은 거였다.
노폐물이 배출되지 않으니 몸속에서 암모니아 가스가 생기고 그 역한 냄새 때문에 음식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입맛이 전혀 없는 아이에게 환자식 식단은 말도 안 되는 횡포같았다.
동물병원 진료비??
부르는 게 값인 듯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동물병원의 진료비는 늘 수납 전부터 긴장하게 했다.
어느 날 점액질 혈변과 흐트러진 아이의 눈동자는 위급함을 알렸다.다급하게24시동물병원을 찾던 그날,아이의 상태보다 의료수가 올리기에 혈안이 된 듯 검사항목과 비용을 나열하는 주치의.병원에 있는 기기는 다 돌리려는 듯느껴지는 건 내가 예민한 걸까.
간호사 손에 안긴 아이는 두툼한 장벽으로 가려진 세계로 사라졌다. 30여 분 후에 기진맥진해 나타난 아이의 검사 결과는 말기신부전증과 심장병, 고혈압진단이었다. 검사비조로 130여만 원의 진료비가 청구되었다. 불과 일주일 전 설사 때문에같은 병원다른 수의사랑 상담했을 때 받은검사비 견적과 무려 세배차이가 났다. 초장부터 의구심에 싸이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검사한 항목과 사진을 요구하니 갑자기 30만 원을 할인해 준단다. 소변 잘 보는 아이에게 소변줄은 왜 끼우느냐 항의하니 그럼 13만 원을 더 빼주겠단다. 그렇게 하고도 첫날 검사비는 87만 원. 입원하지 않으면 아이의 생명을 장담 못한다기에 놀라서 입원시켰더니 입원비는 또 따로 28만 원. 대체 이놈의 동물병원 의료비 책정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니 답답하기만 하고. 하루에 25만 원~28만 원씩 매일청구되는 병원비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손바닥만 한 유리 병실에 갇혀 링거줄 하나와 레날이라는 습식사료에 의존한 채 숨 막히는 투병생활이시작되었고, 하루, 이틀... 닷새.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에게 느닷없이 치매 진단이 내려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하니 전혀 입에 대지도 않는 사료와,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었다. 먹는 게 없으니 정신이 희미해지는 건 당연했다. 병원에서 굶어 죽으나, 집에서 사랑받으며 맛있는 것 실컷 먹다 편안하게 죽으나, 떠나는 건 마찬가지란 결론을 내린 난 야심한 밤에 아이의 퇴원을 강행했다.
아. 참. 입원 후 다행히 설사는 멈추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후 총명했던 아이는 반쯤 넋이 나간 듯 허공을 보고 짖어댔고 네발로 지탱하고 일어서는 일조차 버거워했다.
초조해진 마음에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반려견들을 케어하는 사례들을 미친 듯 수집하고 분석해 공통된 의견을 모아 자료를 만들었다.
일단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에게 기력을 찾아주는 게급선무였다.
단호박과 당근, 브로콜리를 찌고, 데치고, 삶아서 잘게 부수어 간식을 만들고. 유산균과 오메가 3를 비스킷과 함께 믹서기에 갈아 강제 급식을 시도했다.
하루 종일 물에 담가 나트륨 성분을 제거한 황태를 고아 죽을 쑤어 주사기로 급여했다.
헛짖던아이의 눈은 다시 초롱초롱 빛났고 , 새벽이면 나를 깨워주던 일과를 시작했다.
막내아들은 매일 등에 100ml의 수액을 놓아주고 난 새벽에 30분 정도 더 일찍 일어나 간식을 만들어 강제 급여를 하고 약 먹이고 출근을 한다. 퇴근과 동시에 다시 저녁 간식을 만들어 먹이고 약과 영양제를 섞어 먹였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아슬아슬 생명의 줄타기를 하던 여울이는 여러 번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통원치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인수치를 검사해야 한다며 20여만 원씩 청구되는 병원비, 한 달이 채 안되어서 400여만 원의 거금을 병원비로 지출하고 나니 치료비에 대한 걱정도 사실 많아졌다. 하루하루지출은 구멍 난 양말 늘어지듯 커져만 가는데..,,,
고민 끝에 양심적이라는 추천이 제법 되는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먼저 치료받았던 병원의 진료기록과 검사한 사진 등 모든 자료를 제출했지만, 다른 병원의 검사자료는 쓰지 않겠단다.
같은 검사를 세 가지 기계로 매일 했고, 엑스레이를 5일 동안 매일 찍은 이유를 모르겠다는데 그 사실은 나도 몰랐었다. 약 처방 중 마약성분이 들어있었다는 소리에 뒤통수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충격과 배신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다시 검사를 해야 하나 자괴감에 빠지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