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llaㅡ별꽃 Jan 27. 2020

엄마! 이제 그만 놓으셔도 괜찮아요...

여울이 별이 되어 스러지다.

여울이가 아주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ㅡ

나의 사랑하는 반려견이자 딸 여울이가 2020년 1월 26일 오후 12시경 별이 되었습니다. 17년 전 12월 마지막 날, 방 한 낡은 피아노 아래에서 엄마인 초롱이아주 작아이 넷  출산했고 그중 여울이는 가장 작고 약해 보였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미리 터진 양수를 마셔 호흡곤란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었죠. 초등학생이었던 우리 막내가 그 양수를 입으로 다 빨아내고 인공호흡으로 살려냈어요.  한 줌 밖에 안 되는 작은 여자아이였지만 누구보다 용맹했고, 자존심 강하고, 영민하고 섬세하며 참 따뜻한 아이였어요.


아이 셋은 입양을 보냈고 여울이는 엄마 초롱이와 알콩달콩 아주 잘 지냈어요. 그러다 아빠가 초롱이를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이후로 명랑했던 여울이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현관 앞에 엎드려 깊은 한숨을 내쉬곤 했습니다. 그 아이 눈에 그리움이 가득 차 까만 콩 같은 눈동자가 늘 슬퍼 보였던 모양입니다.

입원한 여울이ㅡ눈이 슬퍼 보임

ㅡ여울이의 투병생활ㅡ

지난해 8월, 만성신부전증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길면 두 달 정도 삶의 여분이 남아 있다는 청천벽력과같은 말을 들었어요. 여울이는 생사의 경계를 여러 번 나들면서도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어요. 그냥 아파하면 될 것을요. 


신부전증 환자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어서 오직 kd라는 환자용 사료에만 의지해야 했지만, 어차피 남은 수명이 정해져 있다면 실컷 먹이기라도 하자 싶어 좋아하는 소고기랑 양배추 사과나 당근을 주기도 했어요. 북어를  고아 먹이고 닭죽을 쑤어 먹이고 단호박 수프를 만들어 먹였죠.  유산균과 오메가를 같이 먹였지만 그 때문에 질소 수치가 올라갔을 수도 있어요.

Kd를 한달 정도 잘 먹어주던 여울이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는 모습을 보며 굶어서 떠나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러다 여울이는 갑자기 그토록 싫어하던 환자용 사료를 먹기 시작했고 한동안 여울이는 참 잘 지냈습니다.  겉보기엔 정상처럼 보여 간간히 산책도 했어요. 여울이는 하나를 받으면 수십 배를 돌려주는 아이였어요.


ㅡ가족들을 케어해 준 여울이ㅡ

간병을 받으며 가족들에게 안 아픈 척 그 못다 한 애교를 부리려 애쓰던 모습,  먹기 싫은 밥을 애써서 먹는 것 같은 모습(신부전증 환자는 암모니아 냄새가 구취로 올라와 식욕을 잃는다고 해요) 투병 중에도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찾아와 엄마 방문을 두드려 주던 기억, 거실에서 엄마 방까지의 거리가 아픈 여울이에게는 천리만리 되었을 것 같은데도 남은 기력을 모아 비척이며  찾아왔어요..

아픈걸 가만히 참고 있는 여으

몸져누워 있다가도 현관문을 여는 가족들 기척에 몸을 일으키려 애를 쓰던 모습, 사람에게서도 얻기 힘든 따뜻함과 배려, 깊은 사랑 위로, 그리고 영적인 힘을 준 아이였어요. 우리 가족을 지켜주던 작은 영웅이며 천사였던  아름웠고 어쩌면 위대했던 존재!!


반려견이란 말도 싫은 오롯한 가족이었던 여울이! 날마다 등에  꽂히는 피하 수액의 공포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날마다 쓰디쓴 약을 먹고 강급 당하는 고통은 또 어땠을는지 짐작이 갑니다.

두 아이가 여울이 등에 수액을 맞추는 모습


 6개월을 여울이 등에 주삿바늘을 꽂으며  아파했던 우리 막내, 힘든 엄마와 동생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커다란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큰 아이!

여울우리 가족들에게 참 따뜻한 사랑을 닫게 해 줬어요. 복닥이는 세상이에서 받은 상처도 쉽게 아물게 하곤 했죠.  오직 사랑만을 준 아이 덕분에 초등학생이었던 막내는  힘들고 예민했던 사춘기를 잘 이겨냈고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바른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나 역시 숱한 격변기를 아이를 품으면서 위로받았고 이겨냈습니다.


 여울이는 가족 그 이상의 위대한 존재였어요. 기적처럼 삶을 이어갔던 여울이는 어쩌면 자신이 줄 수 있는 그 이상의 무엇을 더 주고 싶어 남은 삶을 초월서 살아냈는지도 모릅니다.

떠나기 이틀 전까지 기어서 변기를 찾았던 아이

ㅡ여울이의 따뜻한 작별 인사ㅡ

힘이 들면 편하게 아무 데나 싸도 되는데 아픈 중에도 기어서라도 변기에 대소변을 보던 아이였어요. 떠나기 전날 여울이의 수명이 다해가는 것 같아 품에 안고 누웠어요. 근육이 다 풀려 안으면 온몸이 축 처지고, 세포들의 움직임이 둔해진 게 느껴졌어요. 눈꺼풀에 힘이 풀리고 입은 다물어졌고요.  아이를 품에 끌어안고 몸을 밤새  깜빡 잠이 들었어요.  

떠나기 전날 밤 내 목을 껴안고 잠든 여울이를 막내가 남겨 두었다

목이 너무나 따뜻해 깨어보니 마치 끌어안듯 여울이는 제에 엎드려 잠이 들었더군요. 뜻한 아이지만 사람 품에서 자는 건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 고마웠고 행복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새벽에 몸을 만져보니  심장 뛰는 소리가  좀 더 강해진 것 같아 오늘 하루만이라도 잘 버텨주길 바라며 제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여울이는 떠났습니다. 엄마에게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죽을힘을 다해 기력을 모아 잠시 나아진 것처럼 애를 썼나 봅니다.


일곱 번의 발작과 대소변을 싼 후 큰오빠랑 작은오빠와 눈을 맞추며 마지막 남 숨을 편안하게 천국으로 넘겼다고 했습니다.

여울이 약탕기와 주사기

병원비 때문에 갈등했던 시간이  아주 잠깐 있었어요. 그게 왜 그렇게 미안한지요. 산책을 좋아하고 바람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했던 여울이었는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산책을 못 시켰는지. 떠나기 전에 갈증이 많이 났을 텐데 왜 물을 충분히 못 먹여 보냈는지. 한 모금의 숨이라도 더 지켜내고 싶어 스러져 가는 아이에게 강급을 해서 괴롭혔는지... 아이가 입었던 옷, 베개, 작은집, 밥그릇, 전기방석, 변기, 주사기, 수액, 좋아하던 담요,  약봉지 집안 구석구석에 남겨진 흔적들에 오열합니다.


너무도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는 내 딸! 우리 가족 여울이는 고통스러운 이승의 삶을 접고  그렇게 아름다운 별이 되었습니다. 눈동자가 까만 콩처럼 반짝이던 아이는 엄마랑 같이 서편 하늘 어딘가에 자리 잡고 분명 우리 가족들을 지켜줄 거예요.


여울이 투병중에 찍은 사진


나의 딸 여울아!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 여울이,

천국에서아프지 말고 엄마랑 행복하게 잘 지내렴. 언젠가 훗날 엄마가 떠나는 날 너희 둘이 엄마 마중을 나와줬음 해. 많이 사랑했고 많이 행복했단다.


여울이 덕분에

삶이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했는지 몰라. 천국에서는 목줄 없이 여울이가 좋아하는 학의천변을 엄마랑 마음껏 뛰어다니렴. 꽃비가 쏟아지는 봄엔 꽃잎 하나 입에 물고 나비를 쫓으렴. 그러다 졸리면 햇살 좋은 곳에서 배를 깔고 퍼지게 낮잠을 자는 거야.


여름엔  깡충깡충 징검다리를 뛰어넘으며 청둥오리와 잉어 떼들을 놀라게 해 줘. 천변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물들면 오빠들이랑  갈색 털 날리며 달리기 시합을 하는 거야. 그리고 겨울이 되면 작은 오빠가 사준  좋아하는 꼬까옷 입고 카페도 가야지.

그리고 여울아! 큰오빠를 여울이가 참 좋아했잖아. 오빠 작업하는 방문 앞에 서성이다 말없이 돌아서곤 했어.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큰오빠였지만 여울이 아플 때 오빠가 그랬어. 돈 걱정하지 말고 끝까지 잘 돌봐주라고. 여울이 천국 보내면서 장례식도 오빠가  치르도록 모든 걸 다 마무리해줬단다.  알지 여울아?


여울이 보내고 큰오빠가 제일 먼저 앓아눕더라.


 여울이가 막내 오빠를 잘 키웠어 반듯한 청년으로. 늘 늦게 자는 엄마 걱정에 일찍 자라고 성화를 했고 엄마가 침대에 누워야 비로소 여울이도 잠들곤 했지. 새벽이면 일어나요, 씻어요, 밥 먹어요, 엄마가 출근하기 전까지 엄마를 보살폈고. 우리 가족은 다 알아. 우리가 여울이를 키운 게 아니라 우리가 보살핌을 받았다는 걸.


외할머니에겐 둘도 없는 친구였고 어여쁜 손녀딸이었지. 할머니는 날마다 머리를 예쁘게 땋아 리본도 묶어주시고 예쁜 핀도 꽂아주셨는데 엄마는 그걸 못했네.


  여울이를 편하게 보내주려 해. 우리가 너무 슬퍼하면 여울이 가는 걸음 무거울까 봐 조금만 붙잡다 놓아줄게.  여울이 분골은 엄마방에 있어.  큰오빠가 햇살 좋고 바람 잘 부는 날 보내주래. 훨훨 멀리멀리 자유롭게 날아가라고.


그리고 엄마를 끌어안고 이제 그만 놓아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떠나서 너무 고마워.  

여울아 부디 아프지 말고 천국에서 편하게 쉬렴.


많이 그리울 거야. 다시는 쓰다듬을 수 없는 보드라운 너의 털과  온 집안을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던 발자국 소리도, 새벽에 엄마 방문을 두발로 '콩콩' 두드리던 소리도. 너의 냄새와 한숨소리조차도. 풍뎅이처럼 누워 핑그르르 돌며 애교 피던 모습도,


  아작아작 밥을 깨물어 먹던 소리도. 현관문을 밀치는 소리와 함께 너무 반가워 급하게 달려 나오다 넘어지던 모습도.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던 모습도. '콩콩'  엄마의 새벽 도마질 소리를 듣고 달려와 과일이며 야채를 달라 떼쓰던 모습도, 가족들의 심리상태를 그대로 공감했던 너의 섬세함도,


가장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를 건네주던 순간.. 그립지 않은 것이 없을 거야. 울이가 두고 간 옷과 이불에서 여울이 냄새, 여울이 향이 어찌나 진하게 나던지 막내 오빠랑 참지 못하고 펑펑 울고 말았네.


여울아!

너를 기억할게.  잊지 않을게. 다음 생에서 꼭 다시 만나자.


잘 가 여울아!  내 사랑! 이젠 안녕...,,,

인터넷에서 캡쳐함

2020. 1. 27  엄마가


떠나기 2주 전쯤 ㅡ병원에서 잘 놀던 여울이
단 한순간도 외면하지 않고 카톡과 전화로 조언을 주셨고, 스물네 시간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으로 여울이를 치료해 주신 안양 평촌 #24시 넬동물의료센터 #윤일용 선생님과 넬 병원 가족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울이가 넬 병원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고 활기가 넘쳤어요. 의료진들의 진심 어린 사랑을 알아챘고, 신뢰가 쌓아졌던 때문일 거예요. 마지막 진료를 봐주신 선생님(성함을 몰라서)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평촌#24시넬동물의료센터 가족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힙합, 가파도, 스텔라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