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이 이쯤인 듯싶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법률 용어 따위들과 적반하장 유분수란 실체들이 맴맴 정신을 어지럽히니, 이국만리 머나먼 곳으로 마음을 보내 몇 달쯤 묵었다 오게 하고 싶다.
마음이 가늘고 약해졌나 보다. 사소함에 감정이 울렁거리고 작은 위로에도 코끝이 매콤해온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막내의 다정함에 눈물이 '핑' 돌아 영화 볼 거라며 방문을 닫는다.
게스트가 Djdoc 라고??
난 막내랑 합정동엘 갔고, 초밥을 먹었고,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들어찬 젊은 친구들 속에 섞여 리짓군즈의 힙합에 열광했다.소리치고 노래 부르며 리듬에 몸을 맡겼다. 무거웠던 마음 대신 합정도 거리의 찬바람이 개운하게 내 몸을 쓸고 지나간다.
#가파도 언니
"아이고 미안해. 전화가 너무 늦었지."
공방에서 사 입은 원피스
제주여행 중 만난 가파도 지인의 전화다. 친구와 처음 가파도엘 갔었고 너무 예쁜 공방에 반해 총천연색의 머플러를 사 왔다. 공방 여주인은 처음 보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우린 마치 오랜지기처럼 짧았지만 서로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빈약속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1년 후 다시 그곳을 찾았고 일정상 바쁘게 안부만을 묻고 다시 돌아왔다.
난 두 번째 수필집을 냈고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6개월을 그냥 흘려보냈다. 내내 마음에 걸렸던난 회사에서 잡힌 마라도 일정을 가파도로 바꿨고, 두 번째 수필집을 들고 다시 공방을 찾았다. 그때도 딱 삼분 정도 이야기가 전부였으니......
하지만 삼분의 여운은 생각보다 진했다. 난 책을, 지인은 네팔에서 사 온 양모 머플러를 급하게 목에 감아주었다.
그게 우리가 만난시간의 전부였다.
"세상에!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어쩜 그렇게 세세하게 지난 시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묘사를 해놨던지... 울다가, 박수치다, 웃다... 너무 고마워. 두 번 읽었는데 한번 더 읽을 생각이야."
우리가 만난 시간에 비해 수다는 길었다. 난 애매했던 호칭을 언니로 바꿔 불렀고, 언니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전해왔다.
"우리 후회하는 삶을 살지는 말자. 죽는 날 이런저런 후회하며 아쉬워 눈 못 감지 말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자."
누워있던 마음들이 하나 둘, 벽을 잡고 일어서는 중이다.
#스텔라씨
오십 년은 족히 넘었을 낡은 건물에서 시내에 있는 사옥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하기 전엔 주차하기가 복잡해 가기 싫다고 다들 투정이 한 사발이었는데, 새 건물인데다 주변에 편의시설과 편리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다 보니 환경에 적응하는데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주차였다. 제한된 주차공간은 사원들이 보유한 차량수에 비해 턱 없이 부족했다. 주차가 가능한 시간은 오전 8시 이전이라 이사 오기 전보다 한 시간을 미리 오거나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거나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첫날 출근 오전 7시, 지나치게 일찍 출근했다. 업무 시작시간 두 시간 전이다. 그런데 헉! 소리 절로 나는 풍경! 나보다 일찍 온 사람들이 벌써 주차장 절반을 채웠고 8시가 되기 전에 만원! 우린 그동안 10년쯤 느린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걸까.
중구난방 관리고 뭐고 주차관리 아저씨들 맘대로 주차비는커녕, 건물주가 악덕업주라 돈 한 푼도 아깝다며 차단기를 아예 올려버리고 맘대로 들락거리게 했던 반자동화 시절과 판이하게 다른 과학적 시스템이 금시 또 편해진다.
"안녕하세요. 미소가 아름다우십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큰 미소와 함께 기분 좋은 언어로 늘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는 주차관리 아저씨가 어느 날 물으신다. 이름이 뭐냐고.
발음하기가 쉽지 않은 이름 대신 세례명을 불러드린다.
"스텔라 씨! 오늘은 더 아름다운 하루 보내십시오."
며칠 후 넋 놓고 주차증을 내미는 내게 건네는 아저씨의 인사에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는다. 나는 한 시간 빠른 생활을 시작했고퇴근은한시간 앞당겼다. 덕분에 내 삶의 공간이 조금씩 넉넉해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