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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Feb 15. 2020

바래지거나 짙어지거나...

애써 감정을 초월하기보다

여울이가 떠나고  20일째 되는 날이다. 여울이가 쓰던 물건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배어있던 잔향들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밥도 물도 매일매일 갈아준다.


변기에 남아있는 소변의 흔적은 감히 치우자는 말을 아무도 꺼내지 않는다.  척추 디스크로 걷기가 불편했던 여울이 미끄러지지 말라고 깔아 두었던 방석들과 깔판은 모두 세탁기 속으로 들어갔지만 마지막 누워있던 방석은 거실에 그대로 있다.


여울이가 방문을 긁는 것 같아 자다일어나기를 수십 번, '콩콩' 새벽 도마질 소리에 달려오던 여울이, 여전히 그 아이가 달려오는 것 같아 돌아보거나 거실에 가서 확인하곤 한다.  아직은 그렇다.


여울이를 친동생처럼, 딸처럼, 분신처럼 돌보던 막내의 상실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서로의 아픔을 각자의 방식으로 달래면서도 우린 셋이 조심스레 추억을 꺼내본다.


케어하느라 늘 거실에서 여울이를 데리고 자던 막내는 거실에 있는 시간을 못 견뎌 형방 엄마방을 전전한다.  단 한 번이라도 꿈에 나타나 주길 바라며 사진을 품고 잠을 청해 보지만 야속했다. 섭섭한 게 많았던 걸까. 반면 막내는 눈만 감으면 여울이가 나타난다고 했다.

꿈 이야기를 하던 막내가 참았던 울음을 통곡으로 토해냈다. 덩달아 같이 울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해졌다.

첫새벽에 일어나 여울이 밥 먹이고, 약 먹이고 퇴근하면 막내와 큰아이등에 피하 수액을 꽂면, 차가운 수액으로 오들오들 떠는 아이 담요로 싸서 품에 안아주는 일들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나는 밥을 못 먹어도 여울이가 밥풀 하나라도 먹어야 하루가 편했다.


바쁜 새벽과 바쁜 저녁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부재중 전화다.  평촌#넬동물의료 윤일용 선생님!


 "여울이의 명복을 빕니다. 보호자분들의 상심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갑니다. 저도 아이를 보낸 적이 있는데 아직도 힘이 듭니다.


슬픔을 참지 마시고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우십시오. 그래야 극복이 더 빠릅니다. 선진국에서는 #펫로스 증후군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반려문화가 시작이 된 게 이십 년쯤 되어서 이제 그런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으신 분들은 비난도 하시는데 그러려니 하세요.


 하지만 여울이는 정말 행복한 아이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호자님들과 함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보호자님 가정에서 어나서 사랑받고 자랐고, 보호자님들이 마지막도 지켜주셨습니다.  


병들면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시는 분들도 정말 많은데 보호자님들은 저희가 해주는 것보다 훨씬 더 케어를 잘해주셨고 마지막까지 밥도 먹여 보내셨어요.  여울이가 지난해 시월을 못 넘길 줄 알았는데 저희도 참 놀랐습니다.  제 수명 다하고 갔으니 편하게 보내주시고 막내 아드님도 참 고생 많았고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그림ㅡ황성자

초록색 쉬폰 롱원스피스를 입은 그녀는 강화에 있는 카페를 찾는다.  글 쓰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고 특별한 시간이기에 그 특별함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함이다.   


그녀만의 공간 그녀만의 퀘렌시아!  그 한 뼘의 공간을 누군가 차지해버렸다.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카페 뒤뜰 잔디밭에 앉는다.


등을 보인 한 소녀가 부는 하모니카 소리,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바람 끝에 매달린 풀냄새 바다 냄새가 향긋하다.  햇살은 잠시 그녀의 눈을 감긴다.  문득 빗살 속으로 걸어오는 아주 작고 앙증맞은 아이.  그 아이는 그녀의 손끝쯤에서 멈춘다. 여울이다.  그녀는 밥 한술과 북어를 입에 물고 꼭꼭 다져서 아이에게 먹여준다.  아이를 무릎에 올리고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는다. 갈색과 은색이 어우러진 털이 햇빛에 더욱 반짝인다.  


그녀의 손은 허공을 어루만지고 , 발치 분홍색 꽃잎 하나가 떨어져 있다. 꿈...이었다.


여ㆍ울ㆍ이ㆍ가ㆍ다ㆍ녀ㆍ갔ㆍ다

막내의 팔목엔 초롱이(여울이 엄마)와 여울이가 웃고 있었다.


애써 감정을 초월하지 말자. 

바래지면 바래지는 대로, 짙어지면 짙어지는 대로...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거면 처음부터 키우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동물들을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내가 키우지 않아도 비난은 하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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