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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Mar 15. 2020

자말 엘프나 광장(Place jamaa el Fna)

영혼을 탈탈 털릴 것만 같은.....

어둠이 내린 마라케시는 야누스로 변한다. 낮의 얼굴을 감춘 밤의 얼굴은 화려하고 교묘하다. 붉은색 성문으로 들어는 순간 시간은 수백 년 뒤로 밀려난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속이다.


원숭이를 끌고 가는 남자, 봉 하나에 의지해 서커스를 하는 소년, 앵무새를 어깨에 얹고 돈을 받고 사진 찍는 사람, 둥글게 모인 사람들 속에서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모자를 내미는 사람,


 피에로보다 화려한 의상에 방울을 울리며 물을 파는 남자, 마작하는 사람들, 양꼬치 굽는 냄새, 질레바 여인들, 구두 닦는 남자, 서너 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기가 화장지를 팔아달라며 손을 내밀고, 멀쩡하게 생긴 젊은 여자들이 뻔뻔하게 구걸한다.



 광장엔 금시 어둠이 내리고 쏟아져 나온 인파들은 퍼즐처럼 기이한 문양을 만든다. 7월 한 달간은 더위로 대부분 일을 하지 않고 휴일을 즐긴다. 40도 중반을 오르내리는 기온 탓에 낮에 종일 잠을 자고 밤엔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진귀한 장면을 몰래 찍으려 하면 귀신같이 알고 소리를 지르며 돈을 요구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되레 화를 내는 척하면 금방 또 수그러든다. 이젠 화장이고 뭐고 헐렁한 고무줄 바지에 티셔츠 하나 걸치고 스카프로 대충 둘둘 말고 다닌다. 헐렁한 고무줄 바지 속의 자유로움을 아는 순간 멋스러움은 사양하게 된다.



요술피리 불면 코브라가 춤을 춘다더니 알라딘 복장을 하고 터번을 쓴 남자 하나가 피리를 부니 코브라는 춤춘다. 두 남자는 행인을 잡아끈다. 코브라를 목에 두르고 사진을 찍으라며 잡는데 비단구렁이도 아니고 질겁을 해 도망친다. 유럽 남녀 둘이 목에 목도리처럼 코브라를 걸치는데 행여 사고라도 날까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어떤 순간이라도 만용이나 위험을 부르는 짓은 하지 말자는 게 내 생각이다.


갑자기 한 남자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손짓으로 사람들을 물리친다. 고무통을 뒤집어 그 안에 코브라를 넣어둔 모양인데 세 마리가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목을 뻣뻣이 쳐들고 혀를 날름거리며 인파 사이로 빠르게 다가온다. 소리치는 사람들, 다행히 남자에게 목을 잡힌 코브라 세 마리는 다시 통속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노랫소리, 악기 연주 소리, 행인들 소리, 삐끼 소리, 방울 소리....... 미친 듯 춤추는 불빛과 몽롱함에 끌린 난 광장 한 곳에 오래도록 서성인다. 사람들의 열기와 고기 굽는 냄새가 뒤섞인 광장은 재미있는 지옥이다.


과일 파는 총각의 상술에 녹아 수박 주스를 주문한다. 이곳의 모든 과일과 주스는 무조건 다 맛있다.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의 눈과 마주친다. 차마 마시지 못하고 건네준다. 한 모금 남겨 되돌려주는 아기에게 남은 주스를 다 먹여준다.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다 사 먹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게 좋은 일도 아닌 것 같고. 먹먹함과 씁쓸함에 돌아선다. 온 가족이 구걸하며 편히 살려고 하는 그들에게  단호해야 한단다.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세상에! 새파랗게 젊은 아기 엄마가 그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앵벌이를 시키고 있었다. 이런!



인파에 치여 밀려다니는 광장 한가운데 세 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아기가 작은 수레에 서너 개의 빵을 올려놓고 판다. 하나의 점으로 보이는 아기가 인파에 휩쓸려 버릴까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시간이 깊어질수록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대놓고 구걸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광장 안 피자집에서 피자 먹을 요량으로 나섰는데 입맛이 딱 사라져 광장을 빠져나온다. 사람과 불빛, 소음과 구걸, 도박이 어우러진 사악한 밤의 여왕에게 영혼을 도둑맞은 것처럼 멍하다.


식욕은 없으나 배는 고파 생선 튀김 골목에서 오징어랑 새우, 그리고 가자미 닮은 생선을 튀겨 저녁을 먹는다. 그날 밤도 화장실을 들락이며 꼬인 장을 달래느라 혼쭐이 난다. 에어컨도 없는 숙소에서 밤새 선풍기를 틀며 선잠을 잔다. 훌쩍 떠나 온 여행, 여행은 어쩌면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한 연습 인지도 모르겠다.(2018. 여름)


 



사계의 변화를 만끽하며 눈부신 햇살을 맞이하던 어제가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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