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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Nov 01. 2020

정어리와 노인

여행도 막바지에 이르고


정어리

작은 어촌마을


여행도 막바지에 이른다. 카사블랑카로 돌아가는 길이다. 관광을 즐기거나, 음식을 가리거나, 숙소를 따지거나, 불평이 많다면 이런 여행은 노! 음식 안 가리고, 숙소 안 따지고, 사람 좋아하는 덕분에, 무엇이던 잘 먹고, 잘 자고 매 순간을 다 받아들이며  여행자의 삶을 잠시나마 즐겨본다.
 


난 감히 이곳을 천국이라 부른다. 아니 내겐 천국이다. 속세의 그 무엇도 무겁지 않은 여정. 가끔 공황증 비슷한 감정이 다가오기도, 장이 탈이 나기도 했지만 내가 꿈꾸는 삶의 여정이기에 매 순간 행복하다.
 
문득 항구가 보이고 삼삼오오 아무 데나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어촌마을 풍경이다. 바퀴 한번 구르는데 5분은 걸리는 것처럼  막히는 시내. 복잡한 도로를 어찌 빠져나오간 했는데 주차할 곳이 없다. 골목의 작은 여분까지 어쩜 다 차지해버렸는지 이 마을을 그냥 지나칠까 조바심이 나는데 갑자기 커다란 차가 쑤욱 빠지 여유 있게 주차를 한다.

이번 여행에서 행운의 여신이 틀림없.
 
주차도 전에 차에서 뛰어내 시장으로 달린다.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시장 바닥 어슬렁 거리는 고양이들천국이고, 얼음에 재운 정어리를 사느라 줄지어 있는 사람들. 별별 생선들이 탐이 나는데 한 보따리 사서 아이들 조려주고 튀겨주고 구워주었으면 딱 좋겠다.


여물통처럼 생긴 석쇠 위에서 생선을 굽는다

 우리나라 소래포구 같은 곳에서 시장 상인에게 회를 떠 양념집에서 자릿세 내고 먹는 것처럼, 여기에서도 정어리나 생선을 사서 건너편 생선구이집을 골라 자리를 잡으면 된다.


지금 이곳은 정어리 철인 데다 정어리가 가장 맛있는 계절이란다. 나도 정어리를 스무 마리 정도 사서 사람들이 제일 붐비는 구이집을 찾는다. 생선 굽는 냄새와 연기,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옷을 입고 화덕에 붙어 있는 사람들, 빵과 샐러드 라임주스를 주문하니 주인은 정어리를 순식간에 다듬어 여물통처럼 생긴 구이통 위 커다란 석쇠 위에 생선을 얹고 굵은소금을 술술 뿌려 노릇하게 구워낸다.


구이통 바로 아래엔 우리나라 멸치액젓이랑 비슷한 소스가 흘러넘치는데 용도가 무얼까 궁금해서 물어보려는 찰나 벌써 구워진 정어리 나온다. 내가 궁금해했던 소스도 함께 곁들여졌다. 정어리에 레몬을 잔뜩 뿌린 후 소스를 찍어 양손으로 잡고 뜯어먹는데,  과장되지 않은 표현으로 온몸이 부르르  떨온다.

생선을 발효시켜 만든 소스

갑자가 엄마랑 아들들이 생각이 나 카톡을 보낸다.
 
아무거나 잘 먹는 내 식성을 믿을 수 없다는 지인들 가끔 있다. 너무 맛있게 먹어서
먹어보면 별로인 것도 있어 내 입맛을 백퍼 믿을 수 없지만 이맛! 맛을 보여줄 수도 없고. 소스는 우리나라 액젓처럼 짜지 않고  역해 보이는 비주얼과 달리 무척 고소하다.


정어리와 노인


“아이고 저 할아버지는 먹는 사람 미안하게 왜 저렇게 뚫어지게 쳐다보시는 거야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앉아서 먹는 사람들 옆에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은 무표정하나 그만 먹고 일어나라는 듯 바라보고 있다. 내 옆자리 남자정어리를 다섯 마리쯤 남기고 일어서니 바로 그 자리를 할머니가 차지하 남은 정어리를 다 먹어 치운다.(다 드셨다)

생선을 굽는 사람들ㅡphito by 별꽃

상황이 파악이 된 난 일곱 마리 정도 남은 정어리를 두고 일어선다. 기다렸다는 듯 할아버지가 자리를 차지하는데 오지랖 넓은 난 빵과 주스를 주문해 정어리랑 같이 드시라며 절을 베푼다.


내가 먹으려고 주문하는 줄 알았던 주인은 너무 많이 주문한다며  마음에 들어하지 않더니  너 먹을 거 아니면 그럴 필요 없었는데 라며 인상을 쓴다. 


정작 인사조차 안 하는 할아버지, 난 묘한 신감을 느낀다. 이곳에서 남은 음식은 걸인들의 몫이다. 그들은 먹다 남은 음식을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을 위해 남겨두는 것 같다.

 

 삶의 희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할아버지의 휑한 눈빛, 그저 하루를 연명하고자 음식을 취하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살람. 메ㅎ씨'


들릴 듯 말 듯 인사를 건네는데 순간 난 몹시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아 임 코리안(I'm Korean)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볼 생각으로 시장 골목을 빠져나온다. 갑자기 대여섯 명의 남자아이들이 달려들며 ‘차이나! 차이나! 어글리 차이나! “ 라며 해괴망측한 손동작으로 나를 겁박한다. 이럴 때 물러서면 안 된단 걸 경험으로 체득한지라 "노노! 아임 코리안! 바보 같은 자식들아~~!!"

소리를 빼액 르고 겁이 나 주변을 둘러보니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저씨가 막대기를 들고
벼락 치듯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쫓아낸다.


 위험하니 절대 혼자 다니지 말라며 대신 미안하다 사과까지 하니 놀랐던 가슴이 간신히 내려앉는다.
 
담배연기 지독한 카페 한구석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이곳 커피는 대체로 맛이 별로다. 담배가 일상인 것 같은 사람들, 칙칙한 질레바에 담배연기까지 더해지니 골방에 앉아 있는 것 같다.


물장수의 요란한 방울소리에 이어 한 무리의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넌다. 건너편 하늘에 걸린 구름이 문득 쓸쓸하다.

물장수ㅡphoto by 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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