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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Nov 01. 2020

타 죽어도 좋으리

우크라이나 들판에 끝없이 이어지던


호텔 로비 전경ㅡphoto by 별꽃

페스에서 두 번째 밤이다. 누군가의 방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의 방에서는 나자리노 삽입곡 ‘when a child is born’이 흐른다. 여행자의 마음과 감성은 비슷한 모양이다.


 3층에서 내려다본 1층 로비가 참 예쁘다. 시끌시끌한걸 보니 중국인 관광객 몇 명이 다시 들어온 모양이다.  여행 일정을 대충 정리하고  출발시간을 재차 확인한다.  짐을 정리한 후 모처럼 늦은 아침까지 꿀잠에 취한다.


다음날 아침식사는 영 아니다. 기다리던 하리라 수프도 대추야자도 구멍이 숭숭 뚫린 빵도 없는 밋밋한 아침식사. 남아있는 체리를 깨끗이 씻어 컵라면 통에 담는다. 활기찬 웃음을 도통 찾아보기 힘든 이곳. 이슬람 영향권 탓일까.

묵었던 호텔ㅡphoto by 별꽃

호텔 밖 메디나로 향하는 길목까지 배웅을 하는  주인, 부러질 듯 휘청이는 몸으로 캐리어를 운반하는 벨보이, 오늘 하루 쓸 힘을 다 써버린 듯 기진해 보이는 그에게 팁을 쥐어 주는 일행도 있다. 탕헤르를 향해 가는 길이다.


다시 시작된  폭풍 크레이지!  클락션을 미친 듯 눌러대는 통에 슬슬 신경이 오른다. 신호에 걸렸어도, 승객을 내려주느라 비상등을 켰어도, 앞차가 밀려 어쩔 수 없이 서 있는데도 막무가내 크레이지를 외치는 통에 누군가 욕을 하고, 급기야  길을 건너던 행인이 다가와 문을 두드린다.  앞차가 밀려서 그런 거니 제발 조용히 운전하라 하니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난 아무 잘못이 없어.' 뻔뻔한 특유의 몸짓에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염전ㅡphoto byㅡ별꽃

시내를 벗어나자 바로 시작되는 대평원, 위대하다 모로코!! 활짝 핀 해바라기 꽃밭이 수십km나 이어진다. 소피아로렌 주연 ‘해바라기’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결혼하자마자 세계 2차 대전이 터져 남편 안토니오가 전사했다는 통지서를 받고 망연자실해 있던 그녀에게, 남편이 죽음 직전에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는다.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로 고달픈 여정을 떠나는 소피아 로렌, 우크라이나 들판에 끝없이 이어지던 해바라기. 그녀에게 아팠을 해바라기가 이곳에선 시간을 넘나드는 여행자의 몽롱함이다.

왕복 2차선 도로라 차를 세우기가 쉽지 않다. 몰래카메라처럼 불쑥불쑥 나타나는 경찰차에 주눅이 들어 아름다운 장면들을 대부분 스친다.

타 죽어도 좋으리라 일편단심 태양을 따라도는 해바라기는 죽음의 군무를 펼치듯 그 아름다움은 절정을 넘어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염전을 지난다. 눈처럼 하얀 소금이 작은 산을 이룬다. 올리브 농장과 해바라기 평원이 반복해서 스치고 들꽃은 지천이다. 여름내 푸르던 몸통을 갈색으로 물들인 풀숲에서 새떼들이 날아오른다. 해바라기의 목은 서쪽을 향해 있다. 반복되는 데자뷰 현상.

노점 질그릇 가게ㅡphoto by 별꽃

지난겨울 아틀라스로 가는 길에 들렀던 질그릇 노점, 반가움에 차를 세운다. 여행하면서 뭘 잘 사지 않는 난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데 아버지 대신 소년이 다가와 말을 건다.


’차이나?‘제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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