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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본 유학생 상도 Feb 27. 2023

2장 - 대오각성

이 사람이 오타쿠에서 벗어나게 된 이유

지난 주에 썼던 내용의 다음 이야기입니다.


가볍게 즐겨주시면 될 듯합니다.

작가가 AI로 그린 그림


19살이 되고, 나는 영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대학생이지만, 대학에서의 경험은 나를 아예 다른 사람으로 만들게 된다. 하지만 그런 운명이 나를 기다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학교를 들어갈 때, '학점을 잘 받자'와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자'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들어간 일어일문학과는 너무나 짜릿했다.




10대 시절의 나는 도망치기만 했다. 돈이 없어서기도 했고, 어떻게 내 삶을 바꿔야 하는 지도 몰랐다. 내 세상은 단지 애니메이션과 공상 뿐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여행을 가거나 여자와 사귀는 경험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일어일문학과의 친구들을 만난다. 정말로 엄청난 오타쿠들이었다. 나보다 심각한 수준도 있었고, 드립을 하거나 대화 소재가 나와 너무나 잘 맞았다. 살면서 이렇게 편안한 공간은 처음이었다.




그 덕분에 학과에 적응하는 건 수월했다. 친구들과 이야기 할 소재도 많았고, 다른 친구의 취향을 잘 존중해주었기에 서로 금방 친구가 되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친구보다 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에게는 정반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학과 동아리에 들어가게 된다. 유튜브 일본어 자막을 달거나 책과 노래를 번역하는 활동을 하는 동아리였다. 그곳에서의 나는 최고의 에이스였다. 맡겨지는 일은 1학년들 중에서 가장 먼저 처리했고, 가장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그래서 회장 형은 나를 굉장히 아꼈고, 다른 선배들도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가 1학년 1학기 시절의 일인데, 정말로 너무나 행복한 장소였다.




그러다 한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진다. 회장 형이 회계에 손 댄 흔적을 내가 발견하고만 것이다. 원래 내 성격 같았다면 이에 대해서 따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너무나 무서웠다. 내가 사랑하는 동아리와 장소가 사라지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쉽게 따질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만 살짝 이야기했다.




그 친구와의 이야기 끝에 동아리를 나오는 것으로 결정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픈 선택이었지만, 나 혼자 조용히 나오는 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사건이 있다면 동아리는 알아서 해체될 것이라 예상했다. 내가 동아리를 나오고 3개월 후, 결국 회계 문제와 인력 부족으로 인해 동아리는 해체되게 된다. 멀리서 이걸 지켜본 나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동아리가 해체되면서 제일 아쉬웠던 일은 "좋아하던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와 만날 기회가 사라져 버린 일이다. 이 당시의 나는 연애를 1도 모르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그녀 쪽에서 같이 노래방을 가자고 하고, 놀러가자고 해도 무슨 의미였는지 전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아까운 일이지만, 당시의 나는 준비가 전혀 되있지 않았다. 돈도, 지능도, 행동력도 말이다.




그러다 뒤늦게 아쉬움을 느끼고 그녀와 둘이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은 일이었다. 그녀와 만나지 않은 지 3개월 이상이 지났을 때였다. 나에겐 이미 식어버린 마음을 다시 불타오르게 만들 능력은 없었고, 단지 서로 아는 사람의 포지션이었다. 서로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때는 사회적 지능이 덜 발달할 때였다. 지금도 많이 모자라다고 느끼지만, 이땐 정말 형편없었다. 그래서 가슴 아프게도 저질러버렸다. 고백공격을. 그리고 이때 누나에게 비난을 듣게 된다.




"너 그렇게 살면 아무것도 못해"




"....."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 정말 저 말을 듣고 이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생각만 했던 거 같다. 스스로 제대로 안 살고 있었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내가 못난 놈이고, 잘못된 삶을 살고있는 게 아닌가 계속해서 의심했다. 자의식이 박살났고, 계속해서 내 자신을 해체했다. 이틀 동안 누워서 자의식을 해체한 결과,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개빡치네? 저 여자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한다고? 감히?"




정말 객관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여성에게 그런 비난을 들을 수준인가 싶었다. 누군가에게 내 삶을 폄하당할 수준으로 살고 있는 것에 분노했다. 무엇보다 좋아했던 여성에게 한심하게 비친 내가 너무 싫었다. 더 이상 이런 일을 만들기가 너무나 싫었다. 그녀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싶고, 역으로 내가 무시할 수준의 남자로 성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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