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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본 유학생 상도 Nov 07. 2022

황금 같은 3일간의 일본 학원제 부스 운영

일본 대학 동아리에서의 나날.

 오늘 점심쯤 공원에 나가 잠깐 산책을 했다.

 앞으로의 일이나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의 미래를 상상해봤다.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대학 후배나 지인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할 것 같다.


 “일본 생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나 사건이 무엇인가요?”


 사실 일본 유학 생활 중에서 참 신기방기한 일들이 많아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가장 먼저 11월 3일부터 11월 6일 동안의 경험을 들려줄 것 같다.

 정말 황금 같은 경험을 3일 간이었다.


내 일본 동아리 생활의 시작.


 아마 내 글을 본다는 건 일본 유학에 관심이 있다는 것일 테니, 나름 일본에 대한 문화를 많이 접해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일본의 학교에서는 동아리가 학교 생활의 꽃이라고 해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일본에 있는 거의 모든 학생들은 동아리를 한다.

 그리고 동아리에서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와 사귀고, 저녁 늦게까지 동아리 활동을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귀가부이기에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청춘이라고 하면 동아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일본 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은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 책에 관심이 많았다. 10대에는 판타지 소설이나 문학 위주로 읽었는데, 최근 들어서 그 외의 심리학 서적이나 자기 계발 서적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 부류를 쭉 읽다 보니, 독서가 내 취미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독서를 혼자서 하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지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정보 라이브러리 부」에 가입하게 되었다.


 정보 라이브러리 부는 책과 독서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만든 동아리이다. 처음에는 만들어질 당시에는 도서실에서 활동을 했지만, 현재는 부실을 얻게 되어 부실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로 모이면 같이 보드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곤 한다. 내가 들어갈 당시에는 도서를 소개하는 “북 큐레이터 활동”을 하고 있었다. 소개를 위한 작품들은 이미 다 만들어져 있었기에, 나는 옆에서 책을 찾아주거나 전시물을 붙이는 것을 보조로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처음으로 일본 대학생 친구들과 같이 활동을 해봤는데, 참 신기한 기분이었다.

정보 라이브러리 부, 첫 활동 - 도서 소개


입부했더니 학교 축제 준비를 했던 건에 대하여


 입부를 한 건 좋았으나, 사실 들어가자마자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위에 라이브러리 부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간단히 적어놨지만, 첫 활동을 할 당시에는 저것조차 몰랐다. 그냥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라고 하길래, “나와 관심사가 맞을 테니 입부해야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돌격한 것이다. 그러다가 자세한 활동 설명을 듣다 보니, 마음에 쏙 드는 부여서 바로 입부를 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해버린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이리저리 바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낸 거 같아 후회는 없다.


 입부한 ,  활동을 하자마자 나에게 주어진 일은 학교 축제 준비였다. 무려, 2주 하고도  정도 지나면 학교 축제가 시작된다. 그에 대비하여 우리 동아리는 전시물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전시물은 크게 3가지였다.


「라이브러리  마스코트 캐릭터의  배지 무료 나눔」

「세계에 있는 유명한 도서관 소개」

「사람들의 꿈이나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서 모은 메시지 그림」 


 여기서 나는 「세계에 있는 유명한 도서관 소개」라는 활동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한국인이다 보니, 한국 도서관을 선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서관인 「별마당 도서관」을 선정했다. 그리고 약 1주일에서 2주일 정도의 작업을 거친 후, 작품을 완성했다. 다른 학생들은 손으로 직접 쓴 것들이 많았지만, 나는 프린트를 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직접 그리는 편이 더 정성과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별마당 도서관 전시물


 대망의 학교 축제 준비 날


  학교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전날에는 “전야제”를 한다. 그날은 오전만 수업을 하고, 오후부터는 수업이 없다. 오후부터는 각 부스를 운영하는 동아리들이 부스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 시간을 가진다. 우리 동아리의 경우, 전시와 몇 가지 작품만 만들면 되었기에 그다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메시지 카드를 준비하고, 동아리 포스터를 각자 만들기만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캔 배지도 프린터와 핀을 붙이는 작업만 하면 되었기에, 전날이나 전전날에 이미 다 끝내 놓았다.


 우리보다는 다른 동아리가 상당히 고생이었다. 어떤 곳을 교실 자체를 신사 같이 꾸미는 곳도 있었고, 또 어떤 곳은 노래방을 만드는 곳도 있었으며, 음악을 연주하는 곳, 심지어 어떤 곳은 한국식 전통 놀이를 하는 곳도 있었다. 동아리에서 타코야키나 츄러스를 파는 노점은 말할 것도 없이 더 힘들었다. 어떤 곳은 트럭을 빌려 커피 트럭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그걸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학교 축제를 했을 때, 학생들이 커피 트럭을 운영하거나 노점을 하더라도 술집 밖에 하지 않았으니 정말 색다른 느낌이었다.


 한 가지 슬픈 사실이 있는데, 사실 학교 축제가 시작되기 전 우리 동아리는 다들 그다지 의욕이 없었다.(아마 내가 제일 열심히 했고, 가장 의욕이 많았지 않나 싶다.) 일본에서 학교 축제를 하는 게 이번이 코로나 이후 처음이었기에, 다들 학교 축제가 처음이었다. 동아리 부장이나 부부장을 포함해도 말이다. 그렇다 보니 다들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걸 모르는 상황이었다. 동아리 부부장 같은 경우, 캔 배지를 만들면서 이런 말도 했었다.


이렇게나 많이 필요할 리가 없는데,  이렇게 많이 만드냐!”


 솔직히 나도 좀 그렇게 생각하긴 했다. 내가 살고 있는 텐리라는 곳은 종교 덕분에 나름 시골 중에서는 큰 편이다. 하지만 시골은 시골이다. 오사카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1시간이 넘도록 전철을 타야 하고, 한국 돈으로 편도 기준 8000원 정도 하는 금액을 내야 한다. 그러니 굳이 사람들이 여기까지 올 리가 없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일본에서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일본 대학에서 축제 부스 운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딱히 돈을 벌지는 않아도 말이다.


 그렇게 모두 별 다른 기대 없이, 나 홀로 속으로 몰래 성공시키고자 하는 다짐을 하고 축제를 시작했다.

동아리 축제 부스 입구
학교 축제 시작!


 학교 축제가 시작되고, 첫날과 마지막 날을 내가 담당했다. 사실 이틀이나 담당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이틀 동안 나섰다.

 첫날, 8시에 집합해 부스 준비를 2시간가량 진행했다. 배정받은 교실에서 전시물을 붙이고, 전시물 주변을 간단하게 꾸몄다. 일본의 칠판 아트 같은 걸 떠올리면 되는데, 보고 좀 놀랐다. 일본 대학 친구들의 칠판 그림 수준이 너무나 좋았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정도면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직업을 노려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2명이 그림을 담당했는데, 아래는 주로 남자애의 것이다. 다만 여자애가 그린 칠판 그림은 개 그림 비슷한 느낌인데, 정말로 너무 잘 그려서 놀랐다.)

준비 시간이 남아서 그린 체인소맨..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한 역할은 2가지다.


 첫째, 동아리 전시물의 배치 구조 개선.


 이게 좀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원래 손님이 교실의 입구를 들어오면 아무것도 없이 벽에 포스터만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구조였다. 나는 이게 굉장히 마음에 안 들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시점에서 손님은 별 볼 일 없는 곳이라 생각하고 떠나버릴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의 폐기본을 전시하는 테이블을 손님이 입구에서 바로 보이도록 배치해두었다. 그리고 캔 배지를 나눠주는 테이블, 메시지를 적는 테이블을 모두 조금 더 손님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당겼다.


 언뜻 보면 배치만 바꾼 것으로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이 배치를 바꾼 선택이 사람들을 조금 더 이끌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그 전에는 전시물을 보러 오려고 해도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확률이 컸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다들 동아리 축제는 처음이었을 테니, 그런 사소한 부분은 놓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손님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위치를 바꾼 캔 뱃지 테이블


 둘째, 정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노래로 사람을 끌었다.


 대부분의 카페나 부스를 가면 사람들이 가게를 보게 만들어야 한다. 이건 동아리 축제 교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한 선택은 아이패드를 사용해서 교실 밖까지 들릴 소리로 노래를 켜는 것이었다. 선곡은 한국 곡과 일본, 팝송의 3가지를 섞은 희대의 짬뽕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분위기 있는 곡들을 선정했으니 좋은 효과였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 외에도 부부장에게 부탁해서 밖에 나가 캔 배지를 나눠주며 사람을 모아 오라는 등의 지시를 내리는 거나, 축제 당일 드레스 코드를 맞추는 제안을 하는 등의 신입 부원의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 어떻게 보면 부원들이 기분 나빴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뜬금없이 들어온 유학생의 부탁을 받고 부부장이 밖에 나가서 홍보를 해주고, 나의 드레스 코드를 맞추자는 의견에 따라준 부장에게 너무 감사하다. 배치를 바꾸자고 의견을 내고, 머뭇거리는 듯 하지만 결국에는 나를 따라 도와준 1학년 동생에게도 너무나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다들 한 마음으로 도와주고 열심히 한 덕분일까?


 우리가 원래 하고자 했던 달성량의 2/3를 하루 만에 채웠다.


 원래는 다들 고래 그림의 메시지 카드 90장을 모두 채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하루 만에 60개 정도의 메시지 카드가 채워졌다. 심지어 이게 단체로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의 유입이 시간 관계상 실패한 결과가 이거였다. 만약 성공했다면 3일 동안 진행할 프로젝트가 하루 만에 채워져 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할 뻔했다.


 다들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는지, 엄청 놀라는 반응이었다.

 나도 솔직히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이 오고,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더 많이 왔기도 하고 다른 교실에 비해 즐길 거리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흥행한 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첫 날, 채워진 2/3의 메시지 카드


 첫날 이후에는 너무나 순탄했다.


 처음에 열심히  덕분에 다른 날들은  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최종적인 목표에 도달할  있었다. 부부장이 150개의 캔 배지도 분명 남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결국에는 스스로 잘못 생각했다고 사과했다. 오히려  많이 만들어야  뻔했다고 후회하기까지 했다.   모습을 보면서 남몰래 속으로 조금 웃었다.



역시  19 이후로 성공하는 인생이다.


 갑자기 좀 뜬금없는 이야기인데, 나는 운명이라는 걸 믿는다.


 100% 믿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런 게 있다고 믿는다. 왜냐면, 내가 10대 초에 봤던 점이 있는데 그게 정말로 다 맞고 있다. 심지어 내가 지인에게 추천을 받아 간 유명한 점집 3곳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점괘로 봤을 때 촛불 같은 거라고 한다. 그런데 10대에 무슨 물을 맞아서 10대의 운이 엄청나게 안 좋다고 한다. 놀랍게도 10대의 나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힘든 경험을 했다. 흔히 말해 가난에 허덕거리거나 인간관계에서 배신을 당하거나 연애를 실패하거나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 안 좋다고 해서 계속 안 좋으라는 법은 없다. 20대가 되고 나서부터는 상당히 좋은 흐름으로 간다고 했다. 19살의 여름 방학이었나? 한 번 엄청나게 화난 적이 있다.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세상에게도 그렇고 말이다. 그 이후부터 그냥 미친 듯이 살기 시작했다. 무언가 작은 깨달음을 하나 얻은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19살 이후로는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이뤘다. 정확히는 목표를 세우고 그걸 그냥 실행했는데, 어떻게든 결과물이 나왔다. 덕분에 지금은 작가도 하고 있고, 유튜브도 하고, 일본 유학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자격증도 따고, 유명 유튜버의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도 했다. 내가 만날 수 없는 사람과도 친구가 되기까지 했다. 진심으로 나는 “20살 이후의 내 인생은 계속 성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실패를 하더라도 그건 단지 성공으로 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을 즐기자고 말이다.

 

동아리 축제 최종 날, 완성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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