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것이 일치할 때가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히기에 조금 더 용이한 것 같다. 그와 나의 온도가 그랬다. 서로 즐겨 듣는 음악의 장르가 매우 달라도, 듣지 않는 것이 일치했고 좋아하는 음식의 기준이 달라도 불호의 음식은 일치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억지로 쫓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가령,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상대의 호에 맞추어 술자리를 가져야 할 필요가 없었고, 나의 음악을 상대에게 억지로 들려주며 함께 즐기자는 요구를 하지 않아도 됐다.
새로운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나가고자 할 때, 우리는 종종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지 또 취미나 즐겨보는 영화의 장르가 무엇인지에 먼저 관심사에 두려고 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류의 질문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이야기에 그 어떤 불순물도 첨가하지 않고 존중해줄 수 있었으므로 그의 관심사를 함께 공유하는 것은 나의 생활 스펙트럼을 더 넓혀주는 시간이 되었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불편한 것을 억지로 삼키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