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창문을 열었을 때
가을이 왔다.
가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여름은 너무 더워서 머리가 아플 때까지 에어컨을 틀고 있어야 버틸 수 있고, 겨울은 따뜻한 난방 없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추위에 벌벌 떨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단순히 창문만 열고 있어도 시원한 바람이 나에게 청량감을 선사해주는 계절이다. 물론 봄도 그렇지 않냐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봄에 흩날리는 황사와 건조함을 생각하면 가을은 나에게 딱 맞는 계절이다.
누군가는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쓸쓸함을 느끼는 계절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그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많은 잎이 피어 있어도 언젠가는 시들고, 끝이 있다는 걸 가을은 알고 있기 때문일까.
무언가를 시작할 때도 시작할 때의 기쁨과 설렘보다는 이게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나에게는, 그래서 이 가을이 씁쓸하기보다는 당연하고, 담담한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밤, 창문을 열었는데 선선한 바람이 느껴지고,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시원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을이 왔음을 깨달았다.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 인지도 모르며 살아가는 나에게 가을이 왔음을 깨달은 게 너무 늦은 건지도 모르겠다.
따뜻함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겨울이 오기 전에 지금 이 상태로도 온전한 가을을, 모두가 지금이나마 즐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