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인 줄 알았던 술자리가 함정이었다

직장 내 술자리 성희롱, 피하고 버티는 법

by 감정 쓰는 직장인

뜻밖의 따뜻한 제안

공공기관 계약직으로 일할 때였다.

입사 초엔 A부서에서 일하다가 B부서로 이동해 근무하던 시절,
가족 중 한 명의 장례를 치르느라 며칠간 회사에 나가지 못했다.


당시 그전 A부서에서 같이 일했던 상급자, 40대 아저씨가 있었다.
친하게 지낸 사이는 아니었는데, 뜻밖에도
“너 위로도 해줄 겸, 같은 계약직 동기들 모아서 저녁 사줄게”라며 연락을 해왔다.
나름 고마운 마음으로 약속 장소였던 회사 주차장에 갔는데, 막상 나온 사람은 그 아저씨 혼자였다.
“다들 일이 바빠서 못 온대. 그냥 우리끼리 가자.”
저녁 먹는 게 무슨 대수냐 싶어 따라나섰다.


예기치 못한 동석자

차를 타고 이동한 식당 앞에는 또 다른 낯선 60대 아저씨가 있었다.

타 부서 임원이라며 “이 분이랑 알고 지내면 네게 도움 될 거다”라고 소개했다.
그 순간부터 집에 가고 싶었지만, 거절하긴 어려웠다.

고깃집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점점 이상해졌다.
60대 임원은 소맥만 고집하며 고기 한 점 먹을 때마다 원샷을 권유했다.
나는 당시에도 술을 즐기지 않았기에 몇 번을 거절했지만,
그 임원은 외모와 말투까지 위압적이었고 강요가 심해 마지못해 마셨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취했던 순간이었다.
화장실 가는 길에 바닥이 파도치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내 두 발로 집에 무사히 들어가야 한다’라는 일념 하나로 버텼다.


벗어나고 싶은 자리

저녁도 먹었으니 집에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이번엔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그 60대는 노래방 도우미를 불러 옆에 앉혔고,
40대 아저씨는 나를 앞으로 끌어내 “브루스 추자”며 내 손을 잡으려 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손사래 치며 거절했더니 “원래 A부서 사람들은 이렇게 논다”며 헛소리를 했다.

얼른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마침 부모님 전화가 걸려오자 집에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제야 술자리가 끝났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도 “같이 연차 맞춰 내고 영화 보러 가자”는 제안과,
“날 아빠처럼 편하게 생각해”라는 섬뜩한 말까지 들어야 했다.


다음날 밀려온 불쾌감

술이 깨고 나서 밀려드는 건 불쾌감이었다.

순간엔 그냥 기분 나쁜 해프닝 같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수치심과 분노가 더 커졌다.
하지만 그때는 신고할 수도 없었다.
증거도 없었고, 그 자리에 여직원은 나 혼자였다.
신고자=나라는 게 뻔히 드러날 게 뻔했다.


내가 정리한 대처법

시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에게 정리해 둔 대처법을 남겨둔다.

– 애초에 술자리는 피한다.
아무리 ‘친절해 보이는’ 명목이라 해도, 개인적 술자리는 위험하다.
특히 혼자 불려 나가는 자리는 가지 않는 게 상책이다.

– 녹음기를 활용한다.
불가피하게 참석해야 한다면, 휴대용 녹음기를 켜두는 것도 방법이다.
나중에 ‘증거 없음’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대비책이 필요하다.

– 빠져나올 명분을 준비한다.
가족 전화, 약속, 몸 상태 등을 이유로 삼아 일찍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루트를 미리 마련해 둔다.

그날 나는 분명히 피해자였지만, 신고할 만한 일은 아니지 않나? 라며 내 감정을 축소했다.
가족들에게 말하면 나보다도 마음 아파할 것 같아, 말도 못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자리에서 내가 느낀 불쾌감과 수치심 자체가 이미 명백한 경계 침해였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또 있을 수 있기에, 나만의 대처법으로 스스로를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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