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가 아닌 몰입으로 남은 하루
주말 새벽 세 시 반에 눈을 떴다.
마라톤 행사 부스에서 참가자들에게 제품을 나눠주는 일정이 있었다.
택시를 타고 회사에 도착해 트럭에 짐을 실었다.
제품 특성상 당일 배송이 필요했기에, 일찍 움직여야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부스에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하자 기운이 돌았다.
제품에 관심 보이며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설명하며 응대하다 보니 오히려 재밌었다.
이벤트 시간이 되자 긴 줄이 생겼고, 나는 참여 방법을 안내했다.
핸드폰으로 하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준비한 물량이 예상보다 일찍 소진되었다.
행사가 끝났음을 알리고 잠시 숨을 돌리는데,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전 직장 바자회에서 제품을 판매했던 경험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낯선 사람에게 직접 물건을 팔아봤는데, 의외로 즐거웠다.
몸은 힘들었지만 도파민이 솟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었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동안은 에너지가 오히려 차올랐고, 모든 게 끝난 뒤에야 비로소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늘 단정지어왔다.
극 내향형이자 HSP인 사람은 절대 판촉행사나 영업 같은 일을 잘할 수 없다고.
그런데 이런 경험을 거듭할수록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왜 회사 안에서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게 피곤한데,
낯선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을 응대할 땐 오히려 활력이 생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단순했다.
1. 관계의 지속성이 없고, 역할이 명확했기 때문
일시적 만남이라 감정 소모가 적고, 행사라는 정해진 시간과 과업 안에서 예측 가능한 흐름이 안정감을 주었다.
2. ‘도움을 주는’ 상호작용
억지로 친해지기보다, 필요한 사람에게 정보나 제품을 주는 일이었다. 그 안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3. 즉각적인 피드백
고객의 표정과 반응이 바로 보였고,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말 한마디가 성취감을 준다.
생각해보면, 내향형이자 HSP라고 해서 무조건 영업이나 대면 활동이 맞지 않다는 건 하나의 편견일지 모른다.
중요한 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에너지를 쏟는 방향인 것 같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쓰는 에너지는 나를 소모시키지만
누군가에게 가치를 전하기 위해 쓰는 에너지는 오히려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