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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rant lulu Jan 11. 2024

샤블리한 행복

feat. <밤은 부드러워, 마셔>를 읽고 커피를 생각하다 (2)

제목에서 맛이 싱싱하게 느껴진다. 서늘하게도 느껴진다. ‘굴과 샤블리’. 굴은 바다에서 나는 차가운 성질의 것이고, 딱딱한 껍데기 안에서 시원하게 지내는 것이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내겐 당연하다.     


작가는 파리에서 한 달 내내 굴과 와인을 마셨다. 낮에. 날이 좋은 9월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굴 몇 개에 얼마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카페에 빨려 들어갔다. 와인 한 잔을 주문하려다가 웨이터의 호의로 반 명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 굴을 사랑했고, 그 술도 사랑하게 되었다.     


작가의 굴은 ‘미네랄리티’가 느껴지는 ‘광물질’의 맛이었다. 지구의 시간이 떠오르고, 몇천 년 된 심해의 암석과 파도가 씻어낸 돌들과 그 땀을 맛보는 기분이었다. 껍데기에 고여 있는 굴의 즙을 호로록 마시고 ‘샤블리’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오장육부가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샤블리는 프랑스 지역 이름이며 그 땅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라고 한다. 그곳은 고대의 굴 화석으로 뒤덮인 서늘한 땅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굴을 먹고 자란 샤블리를 마신다는 것은 굴을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작가는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에서 하루키는 스코틀랜드 아일레이섬에 갔다. 그곳에서 나는 굴에다가 그곳에서 만든 싱글 몰트 위스키를 끼얹어 먹으라고, 그 섬의 주민이 권하는 대로 하루키는 굴과 위스키를 먹었다. 하루키는 당연히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고 작가는 열성적으로 말한다.     


글을 읽고 있자니 샤방샤방하고 러블리할 것 같은 샤블리를 마셔 보고 싶고, 아일레이섬의 위스키도 맛을 보고 싶다. 스코틀랜드와 샤블리의 굴은 또 어떤 맛일까. 작가가 미네랄리티의 맛이라고 했지만, 나는 '나의' '상상력'을 동원한다. 깔끔하고도 오묘하게 단맛이 똑 떨어지는 시원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싱싱한 굴의 식감이 뭉클하게 씹히고,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따끈하고 청아하게 올라오는 알코올 기운이 목구멍 안쪽에서 느껴진다.


모름지기 모든 음식에는 후식이 나오는데, 최종 입가심은 커피로 마무리하지 않을까? 만약에 굴과 샤블리, 혹은 굴과 위스키를 먹고 나면 어떤 커피를 마셔야 그 맛을 여운 있게 남길까? 마시기도 전에 괜한 고민을 한다. ‘상상’, 그것만으로도 입가에 침이 고이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이것은 '샤블리한' '행복감' 맞지?     




굴과 샤블리




그림은 한은형 작가의 에세이 <밤은 부드러워, 마셔> 북커버 디자인입니다. 저의 스타일로 따라 그려 봤습니다. 작가님은 표지 그림을 보고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저의 그림이 아니고요. 그림 작가분의 작품을요. 굴 소믈리에가 와인을 서빙합니다. 술이 가득 차 있어서 마음이 벅찼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저도 마음이 벅찬 그림을 그리기를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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