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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Apr 03. 2018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죽음이 주어인 공간, 제주 4.3 평화공원

내 죽음은 8년에 걸쳐 지속됐다. 나는 이름 없는 누군가의 자식이기도 했다가, 고령의 노인이기도 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채 2년도 살지 못하고 죽기도 했으며, 자식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때로 나는 행방불명으로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세상이 나를 찾지 못했으니 나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존재였다. 십수 년이 지난 먼 훗날, 차가운 비석에 적힌 내 사인의 대부분은 총격에 의한 사망이었으나, 나를 죽인 것은 사람이 아니라 권력이었다.


1947년 3월의 첫날에 내 죽음은 시작됐다. 어린아이가 말발굽에 치이는 사건으로 시작된 죽음의 그림자는 섬 하나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렸다. 사람을 ‘없애야 할 무언가로’ 여긴 이들은 ‘초토화 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나를 죽였다. 해안으로 나가면 총탄이, 산간으로 숨어들면 추위와 배고픔이 내 목숨을 앗아갔다. 나의 죽음은 때로는 매우 친밀해서, 불과 며칠 전까지 인사하고 지냈던 이웃이 내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신뢰와 믿음이라는 단어까지도 내 안에서 죽여야 했다. 내 죽음은 섬처럼 고립되었고, 금기시되었다. 그렇게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내 죽음은 섬 전체에 걸쳐있다.


당신이 무심코 걸은 돌담길에서도, 사진을 찍었던 유채꽃밭에서도, 투명한 에메랄드색 해변에서도, 가쁜 숨을 몰아쉬던 오름에서도, 남원이니 세화니 하는 예쁜 이름의 어느 지명에서도,


나는 죽었다.


나는 만 사천 명이기도 했다가, 이만 명 이기도 했다. 내 죽음은 제대로 신고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찾는 아름다운 섬에서 한때 내 죽음은 생생한 주어였다. 


아침부터 이른 봄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날이었다. 제주의 봄은 육지의 그것보다 늘 한 발짝 빨리 찾아왔다. 한없이 맑은 봄볕은 그 날의 목적지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4.3 평화공원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평화공원 전시실에서 죽음은 계속해서 발걸음을 따라다녔다. 평화와 죽음이라는 역설적인 단어가 공존하고 있는 무거운 장소였다. 그 장소에서 죽음은 생생한 주어였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한없이 올라가던 영상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서 그들의 이름을 응시했다. 하얀색의 활자는 무기력했고, 내 시선은 안일했다. 나는 그곳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오씨 성이 시작될 때부터 그 성이 모두 끝나 성이 바뀔 때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이름 앞의 성이 바뀌기까지는 15분을 훌쩍 넘기는 시간이 걸렸다.

전시실을 나와 커다란 평화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무거운 역사를 담고 있는 곳임에도 따뜻한 봄볕은 차가운 죽음을 위로하듯이 비추고 있었다. 공원에는 무수히 많은 희생자의 이름이 가는 곳마다 가득히 자리 잡고 있었다. 빼곡하고도 차가운 비석의 이름들은 낯설었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검정색 돌에 적힌 하얀색 이름에는 모두 저마다의 사연들이 있을 터였다. 한참이나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모두 그곳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외면의 대가였다.


죽음에 경중이 있을 리 없건만, 나는 사망 당시 나이에 1세라 적힌 누군가의 이름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순결한 햇볕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을 나이였다. 때마침 평화공원을 찾은 한 무리의 가족들이 검은 돌 앞을 지나갔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며, 나는 이들이 이곳에서만큼은 부디 평온을 찾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부질없을 지 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4.3은 한국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아픈 역사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어떤 배경이 있든 수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자그마한 섬 안에서 죽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하는 제주의 4.3 사건이 이제는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이 변하고 있기에 뼈저리게 뉘우쳐야 하는 일도 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마다 이런 아픈 과거가 있음을 이곳에 들러 한번 이라도 보고 간다면, 제주도를 보는 눈이 전보다 달라지고 더 깊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돌담길에도 바다에도, 우리가 알지 못한 이야기들이 늘 우리 곁을 맴돌며 속삭이고 있었음을.


어떻게 글을 써야하나 많은 시간을 고민했습니다. 제가 쓰는 글이 희생자 분들과 유족 분들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랐고, 차라리 쓰지 말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4.3사건을 알리는데에 제 부족한 글이 도움이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4.3 사건으로 희생되신 모든 분들께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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