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어머니, 한라산을 오르다

한라산 영실코스 후기

by 정욱

한라산을 처음 올랐던 때는 2006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일정 중의 하나였던 한라산 등반은 열 여덟 살의 고등학생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기억 속의 한라산은 깎아지른 절벽과 가도 가도 끝나지 않던 경사가 계속되는 곳이었다. 제주에 산 지 반년도 더 지났음에도 한라산을 쉽사리 오르지 못했던 이유는 이런 과거의 기억 탓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만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곳, 쉽사리 도전할 수 없는 곳이 바로 한라산이었다.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한라산만큼은 기억이 안 좋은 쪽으로 부풀려져서 무척 힘들었던 기억만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내게 한라산은 만만히 오를 수 없는 곳, 힘든 여정을 감수해야 하는 곳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그 당시 내가 오른 코스가 영실코스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터넷에선 영실코스에 대해 한라산의 정상인 백록담은 가지 못하고 그 아래 윗세오름까지만 갈 수 있는 평균 한 시간 반의 코스라고 나와 있었다. 분명 그 당시는 세 시간도 더 걸렸던 것 같은데 한 시간 반이라니!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침 친한 선배가 9월에 제주에 놀러 오면서 한라산을 오를 계획인데 한번 같이 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고 나는 이 기회가 아니면 또 몇 달을 그냥 보낼 것 같아서 흔쾌히 혹은 마지못해 수락했다. 서울에 사는 모든 이가 북한산을 가지는 않듯이, 제주에 산다고 한라산을 오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한라산은 왠지 ‘한라산이니까 ’한 번쯤은 가봐야 할 것만 같았다.


수락해놓고 나서도 나는 전날까지 등산 당일 제발 비가 오기만을 내심 빌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 그날 아침의 날씨는 말도 안 되게 맑고 청아한 초가을 날씨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등산하기에는 그야말로 최고의 날씨였다. 그렇게 뚜벅이 둘은 택시를 타고 영실코스 입구로 향했다. 우리가 출발한 곳은 서귀포 월평마을이라는 곳이었고, 택시비는 2만 5천원 가량이 나왔다. 사람의 통행이 드문 곳이라 태우고 나올 손님이 없어 택시비는 미터기를 찍지 않고 일정하게 정해진 비용을 받고 있었다.

영실코스 입구에 도착해 간단한 주먹밥과 물을 사 들고 우리는 등산로에 발을 디뎠다. 등산을 시작하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일종의 체념 비슷한 감정이었는데, 그건 ‘아 이제 발을 들이면 정상에 오를 때까진 절대 되돌아갈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왔다.


그러나 막상 등산을 시작하고 나니 생각보다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초반에는 약간의 경사만 있을 뿐 완만한 평지가 계속됐는데, 그때까진 여유롭게 풍경도 둘러보고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순간 ‘이 정도면 쉽겠는데?’ 하는 자만에 빠졌다.

자만은 채 10분도 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 가파른 계단이 나타나더니, 계속해서 끝이 보이지 않는 경사가 계속됐다. 11년 전의 기억이 데자뷔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속으로 ‘아, 큰일 났다’하고 생각했지만 이미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앞에 가던 선배는 쉬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오랜만의 등산이었다. 사람들이 등산하는 이유는 아마 산을 오를 때는 오직 이 산을 어떻게 오를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x나 힘드네! 따위의 생각외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등산은 잡념을 없애고 오로지 내 숨소리와 계단을 오르는 다리의 근육에만 집중할 수 있는 원초적인 시간이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평소와는 완벽하게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적의 행위…. 따위의 생각들은 사실 아주 초반에만 했다. 이런 진지한 생각은커녕 산을 오르면서는 오로지 ‘언제 끝나나’, ‘이 언덕만 오르면 끝나겠지’, ‘설마 사람들이 개미만 하게 보이는 저곳까지 올라야 하는 건가’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처음엔 멋진 풍경을 보며 감탄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오르는 산행을 생각했으나, 그런 순간들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았다. 우리가 등산하면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장면은 대부분 앞사람의 발과 등, 그리고 내 발이다. 목이 뻐근할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산을 오르다 보면 이곳이 한라산인지 어느 이름 모를 언덕인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가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깎아지른 절벽과 높은 고도 탓에 형성된 독특한 식생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런 잠깐의 순간들에 감탄하다 보니 어느새 드넓게 펼쳐진 평원인 선작지왓에 도착했다.

우리는 두 번 정도만 잠깐 쉬었을 뿐 쉬지 않고 다리를 놀려 산을 올랐다. 한번 쉬기 시작하면 더 오르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한 시간 반 걸린다는 영실코스를 채 한 시간도 되기 전에 주파했다.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활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나도 이렇게 오를 수 있는 곳이라면, 조금만 느긋하게 오르면 고생은 좀 하더라도 누구나 오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산 정상엔 드넓게 펼쳐진 들판이 없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라산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산이다 보니 백록담 바로 아래에 이런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 시야에 가리는 것 하나 없이 구름과 눈높이를 같이 할 수 있는 곳. 그곳에 있으면 남쪽에서 사람의 손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올랐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평온해진다. 물론 이제 고통스러운 산행의 시간은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선작지왓을 천천히 걸어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한 뒤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컵라면을 사서 주먹밥과 함께 먹었다. 하이라이트는 집에서부터 들고 온 캔맥주였다. 한라산은 국립공원이자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쓰레기를 버릴 수 없으므로 자기가 먹은 쓰레기는 자기가 가져가야 함은 물론이다. 고된 산행 후에 컵라면과 맥주를 먹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날씨는 맑았고 윗세오름에 불어오는 바람은 약간 쌀쌀하게 느껴질 정도로 시원했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도 100%의 바람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바람은 깨끗했다. 해발 1700m의 평원은 어딘지 비현실적인 데가 있었다.

잠시 허기를 채우며 쉬고 난 뒤, 우리는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남벽 경사면으로 향했다.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약 한 시간 정도를 더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백록담을 가지 못하는 영실코스에선 가장 가까이서 백록담을 볼 수 있는 장소였다. 등산은 한번 시작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쉬웠다. 모든 일이 시작하기 전에 가장 두렵듯이, 등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벽 경사면의 압도적인 절벽을 보고 난 뒤 우리는 하산했다.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걸려있는 구름 한 조각을 보며, 내가 구름을 들이마실 수 있는 건 이 산을 오르는 방법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선작지왓의 드넓은 들판을 눈에 새겨넣으며, 이곳이 신비의 섬 제주도가 시작된 곳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이곳은 그야말로 제주도의 어머니와 같은 곳이었다. 비록 한라산의 심장부, 제주의 자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백록담에는 가보지 못했으나,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며 눈으로만 그를 담으며 시원섭섭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내려오면서는 올라갈 때는 힘들어서 미처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에만 자생한다는 구상나무숲과, 영실기암의 웅장한 모습들, 추위로 인해 짧게 자란 관목들까지.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이 해발 1700m에 펼쳐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생이 아닌 죽음을 떠올렸다. 호흡이 가빠짐에 따라 선명해지던 생의 경험은 푸르면서도 황량한 구석이 있는 한라산과 퍽 대조적이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말라가고 있다는 구상나무 숲과 바닥에 깔린 검붉은 돌, 깎아지른 영실기암의 절벽은 거칠게 내뱉던 내 숨소리가 상징하는 생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등산은 올라갈 때보다도 내려갈 때 더 조심해야 했는데, 힘이 풀린 다리로 인해 몇 번이나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기 때문이었다. 가을 산행이라 다행이었지 겨울이었다면 꼼짝없이 미끄러졌겠구나 싶었다.

하산을 끝내고 앞에 서 있는 택시를 타고 돌아가려 했지만 이번에는 3만원을 달라는 택시기사님의 말에 우리는 버스정류장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영실코스 입구가 있는 곳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또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했다. 고된 산행을 마친 뒤여서 그랬는지, 이 길을 걸어 내려가는 일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좀 비싸더라도 택시를 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한참을 걸어 내려간 뒤였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버스는 40분이나 뒤에 온다고 적혀있었다. 우리는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평상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오직 머리를 흩뜨리는 바람만 느껴지던 시간,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어느 노래 제목처럼,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있었다.

한라산 산행의 후유증은 약 일주일간 지속되며 종아리의 통증을 유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르기 전과 오른 뒤의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집에서 늘 보이던 한라산이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언제라도 다시 산을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11년 전의 힘들었던 기억을 11년이 지나서야 좋았던 기억으로 다시 채색할 수 있었다. 한라산 등반 코스 중에 쉬운 난이도로 꼽힌다는 영실코스를 끝냈으니, 이제 다음엔 백록담까지 올라가는 다른 코스를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위의 글은 제가 소속된 카일루아라는 회사의 서비스 '데일리 제주'에 실렸던 콘텐츠입니다.

*콘텐츠의 저작권은 데일리 제주 및 제작자인 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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