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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Jun 10. 2018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비유

'브로콜리 너마저'제주 공연 후기

대학시절 나는 방송국 오디오 피디였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멘트를 쓰고 음악을 선곡하는 일이었다. 내가 쓴 멘트와 내가 고른 음악이 교내에 울려퍼지는건 라디오 피디를 꿈꾸던 대학생에게 그야말로 꿈만 같던 일이었다.


스무살 무렵은 내게 어떤 의미에선 음악의 르네상스 같던 시절이었다. 토이가 6집을 발매했으며 언니네 이발관은 가장 보통의 존재 앨범을 냈고 브라운아이즈가 3집으로 돌아온 때였다. 마이앤트메리가 건재했고 페퍼톤즈, 10cm, 장기하와 얼굴들 등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10평 남짓한 작은 교내 방송국 조정실에서 그들의 음악을 씨디 플레이어에 올려놓고 하루종일 듣곤 했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을 처음 들은 것도 그때였다. 당돌하게(?) 앵콜요청금지를 부르던 인디밴드. 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을 듣고 20대를 살았고, 친구들과 그들의 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술에 취하면 <2009년의 우리들>을 흥얼거렸고 졸업식날이면 백양로에 <졸업>을 크게 틀어제꼈다. '이 미친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 멜로디는 차분했지만, 내게 늘 그 가사는 일종의 악다구니처럼 들렸다. 졸업하는 이들은 항상 어딘지 불안해보였다. 그럴때마다 나는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졸업하는 선배들과 친구들을 향해 그렇게 악을 썼다. 문득 궁금해진다. 후배들은 여전히 졸업식때면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을 들을까.


2018년 6월 9일은 그런 브로콜리 너마저가 제주에서 콘서트를 하는 날이었다.


콘서트를 가는 당일은 조금 귀찮았다. 함께 가기로 한 사람이 사정상 못 가게 된 탓이 컸다. 취소할까 말까를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귀찮기도 하고 수수료가 아깝기도 해 취소하지 않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콘서트를 혼자서 조금 심드렁한 기분으로 보다가, 눈물을 살짝 흘렸다. 오바 같지만 정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솔직히(멤버 분들께는 조금 죄송하지만)라이브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군, 하던 참이었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나이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어질 30대와 40대를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순간 만큼은 절실하게 나이 든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늘 나이들고 싶어하던 사람이었는데, 처음으로 저들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들의 음악을 처음 들은 지 십년이 지난 서른 살이 되어서야 든 생각이었다.


누가 뭐라든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밴드는 내 20대의 찬란한 비유였다. '브로콜리, 너마저 변하면 안돼.' 라는 혼잣말을 콘서트가 끝난 뒤 중얼거렸다.


*곧 3집이 드디어 나온다고 합니다. 이 공연이 3집이 나오기 전 그들의 마지막 단독공연이 될 것이라고 하네요. 아마 밴드의 이전 음악들보다는 더 밝은 이야기를 할 것 같다고. 이 대목에서 덕원님은 그러기위해 노력했다고 했고, 잔디님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게 이뤄질 거라
믿었던 그 날은
어느 새 손에 닿을 만큼이나
다가왔는데
그렇게 바랐던
그 때 그 마음을 너는 기억할까
이룰 수 없는 꿈만 꾸던
2009년의 시간들

2018.06.09 브로콜리 너마저 제주 공연 셋리스트


속좁은 여학생

편지

청춘열차

그 모든 진짜같던 거짓말

분향

울지마

잔인한 사월

1/10

2009년의 우리들

환절기

졸업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유자차

보편적인 노래

손편지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앵콜요청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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