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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Jan 18. 2019

수천 방울의 따뜻함

2017 몽골 여행(6/16-17)

고비를 떠난 이후로 며칠 째 단조로운 여행길이 계속됐다. 홉스골로 향하는 길은 목적지를 향해 쉴 새 없이 달렸던 몽골 여행에서 일종의 숨 고르기와 같았다. 이 드넓은 땅에서는 차로 반나절을 꼬박 달려도 일정표에 적힌 목적지에 겨우 도착하거나,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날그날 우리가 밤을 지낼 장소는 날마다의 사정에 따라 정해졌다. 어느 날엔가는 우리가 게르와 게르 사이를 여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니, 착각이라기엔 사실에 가까웠다. 우리의 여행은 거칠게 묶자면 울란바토르, 고비, 홉스골, 그리고 다시 울란바토르를 향하며 커다랗게 원을 그리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엔 발음하기도 어려운 몽골의 여러 관광지들과 게르들이 어지러이 펼쳐져 있었다.


결국 몽골 여행은 마치 2호선의 순환열차처럼 큼직하게 원을 따라 돌다가 결국 떠나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도돌이표 같은 여행이었다. 떠나온 곳에서 한참을 도망치듯 달려온 뒤, 도망쳐왔던 그곳을 향해 다시 돌아가는 여행. 그렇게 2호선 외선순환 같은 노선 위를 달리다가 그저 내키는 곳에 짐을 풀고 밤을 보내는 일. 나는 다시 한번 이 여행이 유목민의 삶을 축소시켜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몽골 여행이 2호선이라면, 오늘 우리가 있는 곳은 신도림역을 기준으로 잠실역쯤 되는 걸까 하는 실없는 생각과 함께.

하루가 단조로워지고 몽골에 적응하면서 긴장이 풀린 탓이었는지 여행의 11일째가 되는 날, 도시를 벗어난 지 10일째 되던 날에 나는 약간의 두통과 함께 익숙한 기운이 내 몸을 채워오는 것을 느꼈다. 감기 기운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날의 일정은 오직 게르를 향해 차를 타고 달리는 일뿐이었으므로, 나는 여전히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그저 가만히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쉬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도착한 게르는 우리가 첫 번째로 머물렀던 게르를 떠오르게 했다. 그동안 마치 부락처럼 모여있는 게르 캠프들에 익숙해진 탓이었는지, 겨우 세 채 가량만 있을 뿐인 게르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그곳에 머무르기로 결정한 여행자는 우리밖에 없는 듯했고, 우리가 묵을 게르는 주인이 사는 게르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숙소에 들어와 짐을 풀고 있는데 사람 좋아 보이는 현지인 아주머니께서 들어와 인사를 했다. 가이드와 함께 들어온 그녀는 요구르트처럼 생긴 음료와 옛날에 '유가'라고 불리던 캐러멜처럼 생긴 간식을 가져와 우리에게 대접했다. 요구르트 같은 음료는 '아이락'이라 불리는 몽골 음식이었는데, 외지인이 현지인의 게르에 방문하면 호의의 의미를 담아 대접하는 음료라고 했다. 우리가 그렇게나 궁금해하던 몽골의 전통주, 마유주와 비슷한 음료가 아닐까 싶었는데, 가이드가 원료는 비슷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유가 같던 정체불명의 캐러멜 같은 것은 '아롤'이라 불리는 것으로 역시 우유가 원료인 간식이었다.


우리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그 음식들을 맛보았는데, '막걸리'와 '유가'를 생각한 나는 내 예상 범위를 훨씬 벗어난 그 음식들의 맛에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크게 보자면 막걸리와 캐러멜의 범주에 들어가긴 했지만 훨씬 밍밍하거나 훨씬 시큼한 맛이 강한 음식들이었다. 음식을 맛 본 우리는 살짝 난감해지기 시작했는데, 몽골에서는 대접받은 음식을 남기는 것이 실례라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입맛에 맞았던 일행들과 가이드가 그 음식들을 먹었고 남은 것들은 내일 이동하면서 먹기로 했다. 몽골 현지인의 큰 호의와 선물이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입맛에 잘 맞지 않는 음식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게르 주인 가족들의 환대를 받으며 들어온 그날 오후는 대체로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던 그곳에서는 먼 곳에서 떨어지는 해를 넋 놓고 구경할 수도 없었고, 어딘가를 구경하러 갈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우리 앞에 나타난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사진을 찍거나, 게르에 누워 책을 읽고 낮잠을 자는 일뿐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몽골에서 적어도 10년 이상 한 적 없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얼음땡 등을 하며 놀았다. 스마트 폰과 컴퓨터가 없던 시절엔 도대체 어떻게 살았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까마득한 옛날 같지만 분명 그렇게 놀던 때가 있었는데.

몸이 조금 안 좋았던 나는 저녁을 먹은 뒤 늘 그랬듯이 일행들이 모여 놀고 있는 여자 게르를 뒤로 하고 남자 게르로 일찍 돌아왔다. 저 멀리서 일행들이 왁자지껄하게 술 게임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원체 술자리에서 게임을 즐겨하지 않는 나는 아프다는 핑계가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어차피 정신없이 계속되어오던 몽골 여행의 기록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작은 노트를 꺼내 지금까지의 일정을 기록하던 나는 문득,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일행들의 목소리에 괜히 감상적이 되어버려서는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써 내려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행들과 하루 종일 함께했던 여행에서 느꼈던 점들을 떠올리며 적어 내려가고 있는데, 게르의 천막에 무언가가 한꺼번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였다. 천으로 된 게르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는 이윽고 온 세상을 뒤덮었다. 투두 두둑-하고 정신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편지를 썼다. 마지막으로 운전기사님에게 쓰는 편지를 끝마칠 즈음, 노는 것을 끝낸 동생들이 들어왔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형은 이타적인 사람이야?"

"응? 그건 왜."

"뭔가... 남들 챙기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보여서. 형은 매일 요리하고 사람들 챙기려고 하고 그러잖아."

"음... 글쎄. 잘 모르겠네. 난 내가 이타적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정확히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거야. 나는 남들 챙기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좋거든. 괜히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잖아. 그리고 난 남이 해 준 음식 잘 못 먹어. 내가 해서 망치면 내 탓이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남이 잘못했으면 남 탓하게 되잖아. 나는 남 탓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싫거든. 뭐 어차피 남 탓한다고 변하는 것도 없고."

"음... 그렇구나."

"서울대생다운 질문이네. 얼른 자."

"뭐야, 응 형도 잘 자."


밤새도록 비는 계속해서 게르 천장을 때렸다. 이타적인 사람이라,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그날 그 동생의 질문과 내가 그에게 했던 답변은 여전히 살아가면서 곱씹어보게 된다. 나는 정말 이타적인 사람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이란 건 알겠는데. 그래서 그날의 답변처럼, 나는 여전히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날 빗소리에 잠을 좀 설쳤지만 일찍 들어와 쉰 탓인지 감기 기운은 많이 가라앉아있었다. 비가 내린 탓인지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푸르게 개어있었다. 여느 때처럼 왁자지껄하게 출발 준비를 끝냈는데, 전날 우리를 환대해주었던 주인아주머니께서 마중을 나와 계셨다. 이때부터 괜히 마음이 울렁거렸다. 단 하룻밤을 신세 지고 떠나는 여행자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배웅해주는 친절이라니.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게르에서의 환대란 이런 모습이었다. 과하지 않은, 그러나 충분히 따뜻한 환대. 우리는 아주머니와 마지막으로 함께 사진을 찍은 뒤 차에 올랐다. 그녀는 떠나는 우리를 향해 흰색의 우유를 뿌렸다. 우유는 전날 내린 비에 맑아진 공기 사이로 반짝이며 흩날렸다. 아주머니는 점이 되어 작아질 때까지 우리를 향해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여행자들의 안녕을 빌어준다는 그 인사를 뒤로한 채 우리는 홉스골을 향해 달렸다. 열어 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을 닮은 상쾌한 공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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