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한다는 일
서울 합정동의 오스테리아 샘킴, 연희동의 목란, 강남의 쵸이닷 같은 레스토랑의 공통점은 전부 TV에 나온 유명 셰프들이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들은 각각 샘킴, 이연복, 최현석이라는, 한동안 브라운관을 휩쓸었던 쿡방의 주역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사람들은 셰프에 대해 일종의 환상을 품는다. 투박한 재료들을 가지고 그럴싸해 보이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이들. 식재료로 연금술을 부리는 것 같은 요리의 연금술사들. 이제는 쿡방의 열기가 한풀 꺾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V에 나와 현란한 솜씨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셰프들의 음식을 직접 맛보고 싶다는 생각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테다. 그 생각은 자연스레 셰프들이 운영하는 식당에 분명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진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김소봉 셰프의 소봉식당은 TV에 나와 얼굴이 알려진 셰프 중의 하나인 김소봉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유명 셰프가 운영한다는 사전 정보를 알고 간 첫 번째 식당이기도 하다. 이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봉식당은 성산에 잠시 있다가 문을 닫은 뒤, 산방산 근처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김소봉 셰프의 주력인 일식을 파는 곳이지만 초밥이나 회는 아니고, 일본 가정식이라 통칭하는 종류의 음식들을 판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생각하기 편하다. 여기서 하나의 의심이 생긴다. ‘복사한 듯 여기저기 있는 일본 가정식? 왠지 예상되는 맛과 분위기이군’. 그러나 뒤에서도 말하겠지만 나의 이런 편견은 음식을 맛본 뒤 무참히 깨졌다.
가격대는 만원 중~후반대로 가격이 꽤 있는 편이다. 가장 주력으로 보이는 듯한 메뉴인 간장게살장 정식을 비롯해 치킨난반정식 등의 정식 메뉴를 판다. 주메뉴보다도 눈길이 가는 것은 사이드 메뉴들인데, 이름은 상당히 낯설지만 익숙한 식재료를 이용한 음식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눈에 들어오는 메뉴는 아보카도 사시미.
총 두 번을 갔고, 방문 시마다 메뉴가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두 번 다 정식은 비슷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방문때는 간장게살장 정식을, 두 번째 방문에는 치킨난반정식을 주문했다. 사이드 메뉴는 아보카도 사시미와 피망 츠쿠네, 가라아게를 먹어보았다. 피망 츠쿠네는 두 번째 방문했을 땐 없었다.
주문한 메뉴가 나왔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젓가락이 올려져 있던 가마솥 모양의 작은 젓가락 받침대였다. 소봉식당에 들어설 때 봤던 커다란 가마솥과, 트레이드마크처럼 박혀있던 가마솥 모양의 그림들이 그제야 생각났다.
커다란 가마솥의 정체는 바로 밥을 짓는 솥이었다. 가마솥에 짓는 밥은 말로만 들어봤지 사실 한 번도 직접 먹어본 적이 없었다. 아파트에 사는 현대인들이 가마솥으로 짓는 밥을 먹을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난 뒤 나는 내 앞에 놓인 흰 쌀밥에 큰 기대를 하고 한입 떠먹어보았다.
일찍이 어르신들이 극찬하던 가마솥 밥의 맛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밥알은 너무 질지도 않고 너무 겉돌지도 않는 적당한 찰기로 입 안에서 씹혔다. 밥만으로도 맛있다는 느낌을 받으려면 얼마나 세심한 공을 들여야 할까. 집에서 압력밥솥 혹은 햇반으로 편리하게 밥을 해 먹으며 ‘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곁들여 먹는 요리들이 중요하지’하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맛이었다. 밥이 주식인 나라에서 밥은 가장 중요한 식사의 요소였다. 역시 기초가 탄탄해야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간장게장살 정식은 간장게장 특유의 비릿한 맛과 간장의 짠맛이 도드라지지 않고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주 특출난 맛이라기보다는 웬만큼 잘 한다는 집에서 접할 수 있을 만한 맛이었다. 간장게장살 정식보다 놀라웠던 것은 치킨난반 정식이었다. 치킨난반이란 저온의 기름에서 오래 튀겨낸 일본식 닭튀김을 말한다. 흔히 생각하는 튀김의 바삭한 느낌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일본의 음식 중 하나인데, 튀겼다기 보다는 기름에서 오랜 시간 끓여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음식이다. 일본식 닭튀김이라 불리우는 가라아게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음식이다. 치킨난반 정식은 부드러우면서도 제 주장을 충실히 하는 튀김옷의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튀김은 무조건 바삭해야 한다는 내 지론을 무너뜨릴 정도의 음식이었다.
사이드메뉴로 시킨 메뉴들도 저마다의 매력이 출중한 음식들이었는데, 가장 자신 있게 추천하는 메뉴는 바로 가라아게라고 한다. 가라아게는 일본식 닭 다리 살 튀김으로, 밑간이 된 닭 다리 살에 전분을 입혀 튀겨낸 음식이다. 요즘에야 많이 익숙해진 메뉴이지만 가라아게의 특징인 얇은 튀김옷을 살려 맛있게 조리하는 곳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지방과 살이 적절히 조화된 닭 다리 살을 알맞은 바삭함과 튀김옷으로 튀겨내는 이곳의 가라아게는 감히 가장 추천하는 메뉴라 불릴 만 했다.
아보카도 사시미는 얇게 썬 아보카도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세 가지의 소스와 함께 나오는 메뉴다. 미역 그리고 당근을 이용해 만든 소스들의 맛이 독특해 기억에 오래 남는다. 피망 츠쿠네는 고기완자를 피망에 올려 내놓은 음식이라고 보면 되는데, 두 번째 방문시에는 없었다.
소봉식당은 요리외에도 다양한 일본식 술들을 판매하고 있다. 가게를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다양한 술병들이 그저 장식용이 아니라는 뜻. 다양한 일본식 소주부터 사케, 일본 위스키등을 판매하고 있으니 평소 일본 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면 환영할만한 식당이다.
솔직히 유명셰프가 하는 식당은 마케팅의 힘이 어느정도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셰프가 유명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사람들이 몰릴까? 싶은 심리다. 그러나 소봉식당에서 음식을 맛보고 든 생각은 역시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셰프들은 한 순간의 화려함이나 유행에 절대 현혹되지 않는다. 그것들이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 그들은 기본에 충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다. 내가 요리에 대해 애정을 가진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음식에 예의를 갖추는 사람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것들에 마음을 쏟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소봉식당에서 단순하기 짝이 없는 흰 쌀밥을 먹었을 때 나는 내 그런 믿음이 절대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세상에는 기본에 충실하는 것 만큼 어렵지만 확실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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