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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r 08. 2019

몽골, 안단테

2017 몽골 여행(06/19 - 20)

19일


음악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들은 안단테(Andante)니 데크레센도(Decrescendo)니 메조 피아노(Mezzo Piano)라는 단어들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 피아노를 배울 때 나는 이런 단어들의 뜻을 외우느라 골머리를 썩고는 했다. 겨우 십 대를 앞두고 있던 소년에게 느리게, 점점 약하게, 조금 여리게 연주하라는 섬세한 악보의 요구는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었다. 하기야, 그 섬세한 감정의 표현을 이제 겨우 피아노를 시작한 보통사람이 어찌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건 내게 음악적 재능이 없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이를 한 살씩 먹어 갈수록 악보에 쓰인 저 섬세한 음악 용어들의 뜻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안단테가 말하는 '천천히 걷는 빠르기'는 어느 정도의 속도 일지, 여기서 데크레센도로 연주해야 하는 이유는 왜인지 이제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악보에서 작곡가가 드러내고자 했던 감정이 어떤 것일지 상상하는 것이 꽤나 재밌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이제는 피아노를 그때만큼 칠 수 없어서 슬프지만.


그래서 가끔 상상하곤 했다. 인생의 한 장면을 작곡해 악보에 적는다면, 나는 그 순간을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하고. 만약 내게 몽골 여행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던 그 순간을 작곡하고 한다면, 나는 악보에 어떻게 적어냈을까. 마지막이 최대한 유예되길 바랐던 내게 그 날의 빠르기는 안단테 정도가 적당했다.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라는 뜻의 안단테. 나는 그 순간이 걷는 정도의 속도로 지나가기를 바랐다. 끝없는 여행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제발 이 순간만큼은 천천히 지나가게 해 달라고. 뛰지 말고, 날지 말고, 걷는 듯이 느리게 지나가 달라고.

홉스골을 떠나면서부터 구름이 끼고 날씨가 흐려졌다. 이윽고 차창에는 빗방울이 맺혔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우리는 전날 보았던 완벽한 은하수를 얘기했다. 여행은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에게 앞으로의 여정은 이 땅을 떠나 여행을 끝내기 위한 이동뿐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우리가 처음 몽골에 도착해 발을 디뎠던 도시이자 반나절 만에 떠나왔던 도시, 울란바토르였다. 그곳까지는 차로 이틀을 달려야 했다.


여행이 끝나간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는지, 이런저런 생각들은 한꺼번에 떠올랐다가 형태가 불분명한 덩어리로 뭉쳐져 흘러갔다. 문득 몽골에서 해 먹는 저녁은 오늘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일행들에게 마지막 저녁식사로 무얼 해주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온 수많은 음식들 중 우리는 크림 파스타를 해 먹기로 정했다. 이윽고 차는 도시에 도착했고, 나는 자그마한 마트에서 크림 파스타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과 내가 마실 맥주를 담았다.


장을 본 뒤 다시 짧은 시간을 달려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평소와는 달리 게르가 아닌 나무로 지어진 집이었다. 몽골보다는 북유럽이나 캐나다 어디쯤에 있을 법한 집이었다. 풍경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선의 끝에 산이나 숲 같은 무언가가 걸리는, 몽골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고, 어지러이 놓인 산맥을 닮은 구름들이 조금씩 태양을 가리며 물러나고 있었다.

새로이 도착한 숙소의 낯선 풍경들을 구경하다가, 크림 파스타를 해 먹었다. 몽골에서 크림 파스타를 먹게 될 줄은 몰랐다며 좋아하는 일행들의 표정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몽골에서 파는 유제품들은 우리나라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것들보다 풍미가 훨씬 강했다. 생크림이 아닌 우유를 써서 만들었음에도 크림 파스타는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그릇을 싹싹 비우는 그들의 모습을 아빠미소로 바라보았다. 요리의 즐거움은 언제나 내가 먹는 것보다 남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데에서 왔다.

크림 파스타를 먹고 난 뒤에도 시간은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숙소 안과 밖에선 파리의 날갯짓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산이라서 벌레가 많은 듯했다. 우리는 남녀 숙소 각각에 모기향을 피워두고 땔감을 태웠다. 고지대에선 해가 저물면서 기온이 급격히 내려갔다. 한여름의 난로라니.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그 두 단어의 조합이 퍽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다가올 악몽 같은 밤은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구름 사이로 해가 지는 모습을 넋 놓고 쳐다보며 사진을 찍다가, 여자 숙소에 모여서 한참을 떠들며 놀았다. 사두었던 술이 다 떨어져 갈 때쯤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며 흩어졌다.


이윽고 나를 비롯한 남자들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왔다. 방에는 난생처음 본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어림 잡아도 수백 마리는 될 듯한 파리들이 바닥에서 요란한 날갯짓을 하며 기절해 있었다. 피워두고 나간 모기향 탓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파리들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파리들은 열어둔 캐리어 안에서도 기절해 있었다. 저절로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지옥도가 있다면 이런 걸까-하는 생각을 했다.


"으아아아아악!!!!!! 아... 아아아아아!!!"


우리가 계속해서 질러대는 소리를 들은 여자 일행들이 남자 숙소로 왔다. 그들은 우리가 목격한 풍경을 보고서는 똑같이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남자들은 어떻게든 그곳에서 자야만 했다. 우리는 운전기사의 도움을 받아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파리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두꺼운 종이를 구해 빗자루 삼아 파리들을 쓸어 밖으로 내다 버렸고, 안에 있는 짐들을 다 꺼내 캐리어를 털어냈다. 파리들은 쓸어도 쓸어도 어디선가 계속해서 떨어졌다. 나는 그 모습을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사태가 조금 진정됐을 때쯤엔 이미 파리의 날갯짓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충격적인 광경을 애써 무시한 채 불을 끄고 누웠지만 파리들의 날갯짓 소리는 여전히 귓가를 맴돌았다. 환청인지 실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온몸을 이불로 덮고, 혹시나 자는 동안 입으로 들어갈까 두려워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이어폰을 꽂고 잠을 청했다. 파리의 날갯짓 소리는 밤새도록 방안을 가득 채웠다. 한동안 트라우마로 남을 기억이었다. 모기향을 피워두지 말걸 하는 후회를 계속하다가, 파리들은 우리를 원망하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20일


아침이 되자 파리들의 날갯짓 소리는 거짓말처럼 잦아들어 있었다. 전날의 악몽 같은 밤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파리 소리에 깼다가를 반복했던 것 같은데. 나뿐만 아니라 같은 방 남자들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른 이 지옥 같은 숙소를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떠날 준비를 끝마쳤다. 나는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한 번에 모든 짐들을 밖으로 빼낸 뒤 차 안으로 숨어들었다.


내일은 아침부터 울란바토르로 향해 저녁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갈 예정이었으니, 몽골에서의 여행은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가이드는 우리가 '아마르바야스갈란트'라는 사원 근처에서 묵을 예정이라고 했다. 수도이자 대도시인 울란바토르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의 흔적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비포장도로가 포장도로로 바뀌었고, 마을의 규모도 조금씩 커지고 있는 듯했다.

사원은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우리의 흥미를 잡아끌지는 못했다. '편안한 즐거움'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뜻의 아마르바야스갈란트 사원에선 몸도 마음도 편했지만 즐거웠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외관은 허름했다. 지붕에는 풀이 듬성듬성 자라 있었고 나무 기둥에는 무수히 많은 흠집들이 나있었다. 우리나라의 절과 언뜻 비슷해 보였지만 세세하게 관찰하면 다른 점들이 보였다. 우리의 가이드는 자기도 잘 모르니 알아서 구경하라고 했다. 저 친구는 우리가 자신을 나름 돈 주고 고용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여느 종교시설이 그렇듯 사원 역시 경건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감도는 장소였다. 그 안에서 종종걸음을 하며 빠르게 어딘가로 향하던 승려들의 모습은 꽤나 이국적으로 보였다. 그들은 우리나라 스님들과는 다르게 적색의 가사(Kasaya)를 입고 있었다.

사원을 구경하고 돌아오자, 운전기사 아저씨가 게르에서 양고기를 요리하며 실력 발휘를 하고 있었다.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적혀있었던 공식 일정, 마지막 날 저녁의 양고기 파티였다.


몽골의 대표적인 전통음식 중 하나인 이 요리는 '허르헉'이라고 불린다. 허르헉은 양고기를 양파나 감자 등의 각종 야채 등과 함께 솥에 넣고, 여기에 뜨겁게 달군 돌을 넣어 익히는 유목민들의 전통요리라고 한다. 원래는 집안에 아주 귀한 손님이 왔을 때나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먹는 음식이었지만, 이제는 관광객들이 몽골에 여행 오면 꼭 한 번씩은 먹게 몽골의 대표 음식이 됐다.


고기와 야채 사이사이에 뜨거운 돌을 넣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아마 저 돌에서 나오는 열을 통해 안쪽의 열기가 닿지 않는 부분까지 골고루 익히기 위함인 듯했다. 나중에 아저씨는 몸에 좋다며 이 돌을 우리에게 양 손으로 잡아가며 만져보라고 했다. 어디에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돌은 식었어도 여전히 뜨거웠다.

여행 초반에 먹었던 양꼬치구이의 감동을 아직 잊지 못했던 우리는 이 몽골 전통요리가 되기만을 기다리며 게르 밖에서 시간을 때웠다. 게르 안은 가마의 열기와 양고기 냄새로 이미 우리가 들어가 있을 곳이 못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게르에서 나오자, 청량한 바람 한줄기가 느껴졌다.


요리시간이 비교적 긴 허르헉이 준비되는 동안 우리는 오랜만에 신호가 잡히는 핸드폰을 붙잡고 우리가 건너온 세상의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2주일 가까이 핸드폰 없이 살았더니 이젠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일도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이게 바로 디지털 디톡스라고 불리는 그걸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거나, 시답잖은 수다를 떨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들을 둥글게 펼쳐놓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 모습이 이제는 어색함 없이 꽤나 잘 어울려 보였다.

밖에서 한가롭게 떠들고 있는 동안 드디어 허르헉이 완성되었고, 우리는 게르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즐기기 위해 들어갔다. 게르 안에는 후끈한 열기와 함께 양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안경에 서린 김을 닦아내며 완성된 요리의 모습을 구경했다. 흡사 갈비찜 같은 모습이었다. 아저씨는 그릇에 하나씩 양고기를 담아주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들이 먹기엔 꽤 많은 양이라고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는 이 게르의 주인들에게도 감사의 의미로 음식을 나눠주러 가셨다.


잔뜩 기대하고 고기를 한입 물었는데,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형 왜 그래?"

"... 이거 좀 비리지 않아...? 양고기 냄새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어? 사실 나도 그래... 티 내기 좀 미안하긴 한데 살짝 비릿하네"


허르헉에서는 지금까지 먹어본 양고기의 냄새와는 차원이 다른 향이 올라왔다. 고기가 질긴 것을 떠나서, 양고기 특유의 잡내가 꽤 강하게 올라와서 먹기가 쉽지 않았다. 독특한 맛이었고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잡내는 쉽사리 적응할 수 없었다. 이 기억 때문에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당분간 양고기를 먹지 못했다. 모르고 먹었을 때는 상관없었는데, 알고나니 참고 먹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고기 몇 덩이를 먹다가 감자를 집어먹었다. 몽골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면 나라마다 감자 맛에도 큰 차이가 있다는 점, 그리고 몽골의 감자는 지금까지 먹어본 감자들 중 가장 맛있다는 사실이었다.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강렬했던 몽골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그동안 우리만의 아이돌이었던 운전기사 두메 아저씨에게 맥주를 건네며 같이 놀자고 작업을 걸었다. 아저씨는 쑥스러운 듯 웃으시며 식사가 끝난 뒤에도 우리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다.


며칠 전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아저씨는 한국에서도 잠시 살았던 터라 한국어를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뒤에서 아저씨 너무 멋있어요, 운전을 어쩜 그렇게 내비게이션도 없이 잘해요, 형 사랑해요(?)등 푼수를 떠는 모든 말들을 다 알아듣고 혼자만 조용히 웃었던 거였다. 아, 배신감. 내가 얼마나 아저씨 잘생기고 멋지다는 소리를 그렇게 스스럼없이 말했는데.


아저씨까지 모여서 저녁을 먹으며 웃고 떠들고 있으니, 정말 가족이 된 기분이 들었다. 몽골에서 2주라는 시간 동안 내내 함께 지냈던 여덟 명이 전부 다 함께 모여 저녁을 먹으며 여행을 마무리지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조금 더 있다가 자리를 떠났고, 우리는 마시고 죽자며 잔뜩 사두었던 술과 각종 음식들을 하나씩 꺼내 달리기 시작했다. 내일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주는 아쉬움과 섭섭함을 그렇게 애써 숨기고 있었다.


몽골에서 지낼 날이 이제 채 24시간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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