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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r 22. 2019

당신이 여행에서
완벽한 동행을 만날 확률

2017 몽골 여행(06/21)

사람에게는 간사한 구석이 있다. 여행을 할 때마다 그렇게 느낀다. 대체로 여행이 시작될 때의 설렘은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빠르게 사그라든다. 그 빈자리에는 피로를 동반한 후회와 걱정, 귀찮음 등이 순식간에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여행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 찾아오면, 우리의 마음은 또 달라진다. 이번 여행에서 보지 못한 풍경이 생각나고, 하지 못한 것들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다시 여행을 시작하던 날로 돌아간다면 설렘은 더 길게 가져가고, 불평은 조금만 할 것만 같다. 여행 계획도 더 체계적으로 세워 '한 번 겪은 일을 다시 반복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야심 찬 다짐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 따위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여행이 설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여행은 늘 한 번 뿐이고,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아갈지라도 전과 같은 여행은 없다. 장소가 그대로이고 사람이 그대로라고 할 지라도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여행을 다녀오면 늘 깨닫는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태도인지를 말이다.


모든 여행의 끝이 그렇듯이 아쉬움과 섭섭함, 후련함과 미련 등의 감정들이 범벅된 몽골 여행은 점점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울란바토르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조금씩 떠남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분간은 또 볼 수 없을 이 곳의 풍경들을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이 주일 동안 함께 했던 우리의 마음을 떠올렸다. 이렇게 많은 인원과 긴 시간의 여행을 떠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내 여행은 보통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 남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고, 나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질 때라야 비로소 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여행으로 함께 다니는 여행의 즐거움과 행복을 깨달았다.


생전 처음 보는 여섯 명이 몽골 여행이라는 목적 하나로 모인 그룹. 그런 사람들이 하루 종일 함께 하면서도 어색함과 서먹함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소한 다툼도 없었다. 지난 이 주일은 내게 기적 같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몽골 여행을 돌이켜보니 가장 기적 같았던 건 밤하늘의 은하수도, 사막을 배경으로 낮게 깔리던 석양도 아니었다. 그건 낯선 이들이 만나 함께 이뤄낸 시간과 마음들이었다.


어느덧 익숙한 첫날의 거리 풍경이 데자뷔처럼 속수무책으로 밀려들어왔다. 울란바토르였다. 도돌이표가 있는 악보를 한번 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 내가 지금까지 다녀왔던 여행과는 다른 종류의 마침표였다. 끝이 아니라 이제야 시작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여행 동안 우리를 안전하게 데리고 다녀준 두메 아저씨가 떠나기 전에 급하게 사진을 찍었다. 차만큼이나 심플하고 과묵했던, 그래서 멋있었던 아저씨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잘 가요, 두메. 고마웠어요.

우리는 짐을 들어 첫날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로 올렸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행의 마무리는 뭐니 뭐니 해도 바로 기념품 구매아니겠는가.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다는 국영백화점을 쇼핑하기 위해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이동했다. 몽골의 대표적인 상품이라는 캐시미어 제품들과, 지인들에게 선물로 줄 물건들을 정신없이 담았다. 아, 역시 쇼핑은 늘 짜릿해.


쇼핑을 하고 난 뒤에 불 레스토랑이라는 곳에서 샤부샤부를 먹으며 마지막 식사를 했다. 말고기라는 독특한 종류의 고기가 포함된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맛은 우리나라에서 먹던 소고기 샤부샤부와 비슷했다.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몽골 시내를 자연스럽게 구경할 수 있었는데, 저 멀리 익숙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베네였다. 몽골에서 카페베네라니, 신선한 느낌이었다. 여행 내내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굶주려 있던 나는 달려가서 바로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 한잔에 조금씩 자연에서 문명으로 돌아오고 있는 내가 보였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던 우리는 늦어지기 전에  차에 짐을 싣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바라본 하늘은 제라늄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오렌지색 할로겐 가로등이 손등을 스쳤다. 다들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잠깐 동안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여섯 명이 동시에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앞에서 운전을 하던 가이드가 신나는 노래를 틀었다. 평소였다면 질색을 했겠지만 그 순간에는 차라리 그 노래가 반가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애써 아쉬움과 슬픔을 감추려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떠들었다. 슬픔과 아쉬움, 기쁨이 어지럽게 뒤섞인 공기가 차 안을 채웠다.

우리는 공항에 도착해 마지막으로 여행 내내 우리와 함께 다녀준 가이드 너모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동생처럼 친구처럼 언니처럼, 우리가 불편하지 않게 대해주었던 너모나 덕분에 여행의 끝까지 즐거운 기억만을 남길 수 있었다. 가끔은 가이드인지 같이 여행 온 친구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주방에서 함께 요리할 때마다 나누던 대화들 속에 묻어나는 그녀의 책임감만큼은 늘 진짜였다. 늘 잘하고 싶고 더 좋은 것만 보여주고 먹이고 싶어 했던 너모나의 마음은 항상 진심이었다.


이렇게 14박 15일의 몽골 여행이 끝났다. 이 여행 뒤로 많은 것이 변했다. 좋은 동생들 다섯 명이 생겼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가끔씩 몽골이라는 미지의 땅을 그리워하는 밤이 늘었고, 밤하늘을 바라보고 아쉬워하는 날이 많아졌다. 붉은 노을을 보면 지평선으로 아득히 떨어지던 몽골의 해가 생각났고, 텐트를 보면 게르에서 의미 없이 흘려보내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세상에 끝나지 않는 여행이란 없다. 끝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길 잃은 방랑일 뿐이다. 끝이 있어야 여행이 아쉬운 법이고, 아쉬움이 남아야 지난 여행을 떠올리며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쉬움이 우리를 다시 여행이라는 길 위로 올려놓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안다. 어느 것 하나 아쉽지 않은 것이 없었던 몽골 여행의 끝이었지만, 그 아쉬움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메시지로 다 함께 또 한 번 여행을 떠나자는 얘기를 건넨다. 여섯 명의 몽골 여행은 끝났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몽골 여행기를 끝냈네요. 조만간 책으로도 나올 예정입니다. 어젯밤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습니다.

책으로 나오면 다시 뵙겠습니다. 이제 미뤄두었던 어머니와 함께 다닌 유럽 여행기도 빨리 써야겠네요.


감사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jw_yoon_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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