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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Jun 21. 2019

서점의 매력

굳이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는 이유

지금부터 내가 말할 서점의 매력이란 온라인 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에 대해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나는 여전히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산다. 사실 나는 책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인터넷 쇼핑을 탐탁지 않아한다. 인터넷에서 옷을 사면 열에 아홉은 실패하곤 했으며, 눈으로 직접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채 식재료를 사는 일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온라인 쇼핑을 꺼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배송이 올 때까지의 기다림을 참지 못하는 급한 ‘승질’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득이하게 아주 무거운 물품을 시켜야 할 때가 아니라면 나는 오프라인 쇼핑을 선호해왔다.


출판사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라는 드라마에서 서점과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신입 편집자들이 서점에 놓인 책이 파손될 경우 그 몫은 온전히 출판사의 것이라는 말을 듣는 장면이었다. 출판을 하기 전까지는 나도 잘 몰랐던 사실이었다. 서점은 일종의 판매대행사다. 그들은 출판사에서 책을 위탁받아 판매를 하고 있는 것이므로, 팔리든 팔리지 않든 사실 서점 입장에서는 부담될 것이 없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독립서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현상 역시 이런 배경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콘텐츠를 사비로 채워 넣을 필요가 거의 없기 때문에, 독립서점은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기 투자자본이 적게 들어간다.


드라마에서는 서점에서 지저분해지거나 파손되어 팔지 못하게 된 책들이 결국 출판사로 반품이 되어 폐기 처분해야만 하는 상황이 나온다. 출판사와 담당 편집자, 작가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한없이 속상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에게는 그저 흔한 책 한 권일뿐이지만, 작가와 편집자에게는 하나하나가 다 제 자식 같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서점에서 사들인 다음에 파는 시스템으로 바꾸면 출판사의 부담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만약 그렇게 운영된다면, 서점은 당연히 잘 팔리는 책만 들여놓을 것이고 그럼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책과 작가들은 독자를 만날 기회도 얻기 전에 묻혀 없어져버릴 테니까.


세상에는 곰돌이 푸와 카카오 라이언을 찾는 이들도 있지만 에르베 기베르나 루쉰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오프라인에서 서점을 사는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나는 왜 직접 서점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책을 사는가? 그건 책들이 누구에게도 읽히지 못한 채 커피 한 방울 흘렸다는 이유로 파쇄기로 들어가는 운명을 조금이나마 막아주고 싶어서다. 되지도 않는 오지랖과 온정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내 책들도 어디선가 그런 운명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괜스레 안타까워져서 그렇다.


이유는 또 있다. 종이 책은 만져봐야 안다. 나는 사람과 책 사이에는 일종의 교감 같은 것이 있다고 믿는다. 사람이 책을 고르기도 하지만 책도 사람을 고른다. 인터넷으로만 봐서는 절대로 책과 교감할 수 없다. 이 책의 무게는 어떠한지, 종이의 질은 모조지인지 스노우지인지, 색상은 이 노르스름한지 새하얀지, 책의 크기와 첫인상은 어떤지, 어떤 자태로 놓여 있는지 따위는 온라인으로 절대 알 수 없다. 서점에서 책들은 저마다의 아우라를 풍긴다. 그들 중에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책도 있고 수줍은 책도 있다. 서가에서 사람의 눈에 발견되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서서 기다리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어차피 너네는 나를 살 테니까' 하는 듯이 누워 있는 책들도 있다. (자고로 책은 누워야 잘 팔린다. 인기 있는 책들은 대부분 누워있다. 건방진 놈들 같으니.)


이렇게 수많은 책들과 눈을 마주한 뒤 의외의 책을 발견하는 기쁨은 운명의 상대를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즐겁다. 이건 서점을 자주 가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는 재미다. 당신에게 팁을 하나 주자면, 평대(누워 있는 책)보다는 서가로 향하라. 진정 매력적인 책은 서가에 있다. 서가에서 눈을 부릅뜨고 찬찬히 쳐다보고 있으면,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다. 그런 책과의 만남이 당신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이런 이유 때문에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책을 산다.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이 어쩌고, 츠타야가 어떻고 하지만, 사실 서점이란 내게는 그저 책을 사는 곳일 뿐이다. 서점이라는 본질에 충실하다면, 인테리어와 책이 진열된 형식은 그저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내게 책을 쇼핑하는 일은 늘 즐거운 놀이이자 유희다. 죄책감도 없으며 소비는 정당화된다. 옛날부터 엄마는 장난감과 게임에 돈을 쓰는 건 뭐라고 해도 책을 사는 건 뭐라고 안 하셨다. 오프라인 서점의 부작용이라면, 매력적인 책들이 너무 많아서 뜻하지 않게 과소비를 하게 되는 것 정도랄까.


아, 집에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많은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기를. 원래 독서란 읽지 않은 책 중에 읽을 책을 고르는 것이다. 세상에 읽을 책이 없어서 책을 사는 사람은 없다. 물론 이건 책상에 읽을 책을 잔뜩 쌓아두고도 또 책을 사들고 들어가는 나를 위한 변명이다.


https://www.instagram.com/jw_yoon_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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