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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Sep 15. 2020

우리가 코로나 19 이전의
여행을 기억하는 방식

여행이 사라진 시대, 인천공항은 어떤 모습일까

코로나 19는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외출 필수템이 된 마스크, 어릴 적 교과서에서나 보던 재택근무, 밤 9시까지만 운영하는 식당 등등. 코로나 19가 오기 전의 생활이 어땠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마스크 없이 외출을 했다고? 세상에.


특히 코로나 19는 우리의 여행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전염병이 창궐하기 전 우리의 여행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손쉽게 이루어졌다. 짐을 싸들고 여권을 챙겨서 공항에서 탑승 수속만 밟으면, 우리가 올라 탄 거대한 금속성의 물체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던 시절이었다. 거기엔 감수해야 할 어떤 위험도 없었다. 굳이 꼽자면 깜빡한 여권, 발급이 거부된 비자, 놓쳐버린 비행기 시간, 인종차별과 소매치기 정도일 것이다. 여기에 저가형 항공사의 등장은 항공사들 간의 경쟁을 부추겼고,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비행기 티켓 가격은 점점 더 저렴해졌다. 오죽하면 일본 가는 비용과 제주도 가는 비용이 비슷하다고 할 정도였을까.


그러나 코로나 19라는 예기치 못한 전염병의 도래로 우리는 그 호시절을 호시절인 줄도 모른 채 우리 곁에서 보내버렸다. 이제 우리는 이전 세대의 인류처럼 목숨을 건 모험을 하며 국경을 넘어야 한다. 사실 넘을 수도 없다. 바이러스는 세계의 빗장을 걸어 잠가버렸다. 전염병은 우리로부터 장거리 비행, 몇 만 킬로미터를 날아 새로운 대륙에 떨어지는 경험, 미지의 세계에 두 발을 내딛는 짜릿함을 앗아갔다. 어느 항공사의 카피처럼, 우리가 여행을 떠나던 시대에서 여행이 우리를 떠난 시대가 도래했다.

나는 여행과 관련된 책을 두 권이나 썼음에도 어디 가서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라고 말하곤 했다. 있어 보이기 위해 아무렇게나 지껄인 말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난 뒤에도 약속이 취소되길 바라는 집돌이였고,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캐리어를 아무렇게나 팽개쳐둔 채 내 방 침대에 드러눕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일상에서 여행이 멀어지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여행을 좋아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 곁에서 여행이 떠나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여행이 자유롭던 시절, 내게 공항은 곧 여행의 동의어였다. 물론 버스나 기차를 타고도 여행을 떠날 수 있지만, 공항이야말로 일상과 동떨어진 비일상의 영역이자 여행의 완벽한 비유 같은 장소였다. 버스 터미널과 기차역엔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고단함이 적당한 비율로 섞여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공항에서는 그런 일상이 묽게 희석되어 흔적조차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비행을 하지 않을 때에도 종종 공항으로 향했다. 먼 곳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음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품을 수 있었다. 공항에 가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여행이 내게서 멀어진 이 시기에, 아무런 목적 없이 공항에 가고자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 날은 4년째 함께 일하고 있는 네스트 호텔과의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영종도에 위치한 네스트 호텔은 대중교통을 타고 간다면 어떻게든 공항을 경유하게 되어 있는 곳이다.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나는 문득 여행이 사라진 시대의 공항이 궁금해졌다. 사람은 얼마나 있을지, 없다면 얼마나 없을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물론 제일 큰 이유는 그냥 공항이 그립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공간, 여행보다 더 나를 설레게 만들던 공간. 그곳에 간다면 손쉽게 여행을 떠나던 시절의 설렘을 다시 되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입국장이 위치한 인천공항 1층에 들어섰다. 벌써부터 공항이라는 공간이 주는 설렘이 느껴졌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기에 지하에 내려가 식사를 할까 하다가, 기왕 온 김에 출국장도 한 번 구경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에 위치한 출국장으로 향했다. 매번 출국장으로 향할 때마다 함께 했던 하얀색 23인치 캐리어가 없으니 어쩐지 좀 어색했다. 매번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캐리어와 함께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면,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두근거림은 층수와 함께 올라갔다.


3층의 출국장은 역시 사람이 없었다. 여행객보다는 직원이, 사람보다는 조명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북적이던 항공사의 카운터는 텅 비어있었고, 여행이 아닌 정말 필요한 업무를 위해 출국하는 것 같은 사람들만이 공항을 서성이고 있었다. 출국 심사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저렇게 한가한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여행의 설렘이 가득했던 공간에 여행의 설렘이 사라져 있었다. 그 커다란 공간이 죽은 듯이 조용했다. 문득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체코 프라하로 향하는 KLM비행기를 타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밤 열한 시를 넘은 시간의 공항에는 지금과 같은 적막함이 가득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2주의 여행을 앞둔 여행객이었고 지금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왼쪽이 야간비행을 위해 기다리던 중에 찍은 사진, 오른쪽은 이번에 공항에서 찍은 사진이다.

드문드문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출국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식당가로 향했다. 다행히 몇 군데의 식당은 아직 영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서울이라는 이름의 한식당에 들어가 출국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엇을 시킬까 고민하다 김치볶음밥을 주문했다. 출국 전후로 단 한 번도 한식을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해외여행 기분을 내려면 한식을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텅 빈 출국장을 바라보며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이 집 미역국 참 잘하네'같은 웃긴 생각을 했다. 왠지 긴 출국을 앞두고 쉽게 먹기 힘들 한식을 먹는 여행객이 된 느낌이었다. 친구들이 있는 단톡 방에 공항 사진과 함께 "얘들아 나 파리 다녀올게"같은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저마다 가고 싶은 도시를 답장으로 보내왔다. 뉴욕, 파리, 바르셀로나, 하와이. 먼 이국의 도시명이 이렇게나 멀게 느껴졌던 적이 또 있었나. 그 도시들이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화 속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친 뒤, 상주 직원 몇 명만이 있는 식당을 나왔다. 평소였다면 여행객으로 붐볐을 장소였다. 나는 천천히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공항철도에 몸을 실었다. 짧은 시간 동안 출국과 입국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체험한 느낌이었다.


비행기에 탑승해 장거리 비행을 하던 그 경험들이 이제는 낯설게만 느껴진다. 인터넷에서 본 한 기사가 생각났다. 항공사에서 코로나 19로 여행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겨냥해 나온 상품에 대한 기사였다. 기사에 따르면 그 상품은 비행기에 탑승해 몇 시간을 비행한 뒤 다시 이륙했던 공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라고 되어 있었다. 굳이 같은 목적지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행위가 다소 비이성적으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여행의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이들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는 알 것도 같다. 여행이 멀어진 시대, 우리는 각자 어떤 방식으로 코로나 이전의 여행을 기억하고 있을까.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두려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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