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욱 Oct 18. 2020

글쓰기에 대한 미세 조언

별 볼 일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종종 지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는 시작도 쓰고 보니 너무 전형적이다. 아무튼 저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열에 아홉 꼴로 우선 겸손을 떤다. "내가 뭐라고. 나 글 잘 못써"하지만 상대는 이런 답변을 들으려고 던진 질문이 아닐 것이므로,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아무런 말이나 지껄이곤 한다. 보통은 "너만의 표현을 찾아"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제일 많이 하는 편이다.


자기만의 표현. 이건 사실 글뿐이 아니라 모든 창작활동에 해당되는 말이다. 누군가를 따라 하는 표현은 금방 그 밑천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모방하는 사람은 보통 그 대상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글의 경우에는 특히 그런데, 어디서 본 듯한 표현과 문장은 금방 생명력을 잃고 시들해진다. 가뜩이나 요즘처럼 자극이 넘치는 시대, 이미지와 영상을 주로 소비하는 시대에 텍스트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란 더 어렵다.


사실 말은 쉽지만 나만의 표현이라는, 연금술사의 돌 같은 마법의 표현을 찾는 일은 평생에 걸쳐서 이뤄야 하는 업적과도 같다. 그래서 내가 황급히 변명하듯 덧붙이는 말이 바로 비유적인 표현부터 바꿔보라는 조언이다. 이 대목쯤에 와서는 대다수의 지인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이를테면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은 클리셰적인 표현을 남들이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독창적인 표현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타피오카 빠진 버블티'라든지 뭐 그런 표현 말이다. 급하게 생각해내려니 저 표현도 좀 구리긴 한데, 아무튼 이런 뉘앙스의 조언을 하는 편이다.

실제로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같은 표현을 조금이라도 나만이 할 수 있는 다른 표현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곤 했다. 그 부분에는 '--'로 표시해둔 뒤 몇 시간이 됐든 며칠이 됐든 괜찮은 표현이 떠오를 때까지 글을 완성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방법이 다소 힘들었지만, 몸에 체득하고 난 뒤에는 제법 익숙해져서 점점 시간이 줄어들었다. 나만의 표현을 차곡차곡 쌓아둔 것 역시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이어서 비슷한 말인데, 내가 '나만의 표현'을 찾으라는 말 다음으로 제일 많이 하는 게 바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긴 글, 하나의 완성된 글을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쳐라"라는 말이다. 대다수의 지인들이 긴 글을 한 번에 써 내려가는 것을 어려워해서 짧은 글을 여러 번 연습하고 긴 글을 쓰고자 한다. 그러나 긴 글과 짧은 글은 완전히 다른 글이라고 생각한다. 글의 호흡, 표현방식 등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편 소설과 장편 소설이 같은 느낌으로 읽히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때문에  글을 쓰고 싶다면, 아무리  글을 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시도하고 시도해야 한다. 물론 나도 잘하지 못하는 일이고 매일이 도전이지만, 모든 야구감독들이 현역 시절 야구를 잘했던 것은 아니니까 말은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하나를 올리기 위해 일주일 이상, 거의   이상을 붙잡고 기도 한다.

그러나 위의 자잘한 테크닉들을 제외하고 글을 쓰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는 방법은 결국 본인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끔 SNS를 보면 불분명한 언어의 덩어리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바람, 아름다운 너, 이런 날엔 모두 옳다'뭐... 묘사하려니 따라 하지도 못하겠는데, 아무튼 이런 류의 글 말이다.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저런 불분명한 언어의 덩어리를 쓰면서 과연 본인은 본인이 쓰고 있는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글이라면, 그 글을 읽고 있는 사람도 그게 무슨 글인지 알지 못한다. 글을 보면 사람이 보이고, 그 글을 쓰던 당시의 작가의 기분이 읽히며 그 사람의 성향이 드러난다. 글에도 지문이라는 것이 있다. 불분명한 글을 쓴다면 그 글을 정말 본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티븐 킹이 한 이 말을 한 번 보자.


"I believe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adverbs"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포장되어 있다."


보통 부사는 거의 모든 문장의 구성단위를 수식할 수 있다. 때문에 문장에서 쓸모없는 구성단위도 부사인 경우가 많다.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문장을 짧게 쓰는 일이다. 자주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란 더하기가 아니라 뺄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사나 꾸며주는 말이 많아지면 문장이 지저분해지고 의미가 희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문장을 짧게 쓰는 연습을 의도적으로 했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선배들이 보여준 '기자의 글쓰기'라는 제목의(다를 수도 있다) 책을 읽었는데 거기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문장을 짧게 쓰라'는 조언이었다. 실제로 그 당시 내 문장은 엄청나게 만연체였고, 이걸 고치기 위해 부던히 연습했다(한 문장에 다섯 줄이 넘어가는 내 전공인 프랑스어와 상충하는 일이었지만 나는 전공에 소홀한 학생이었으므로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문장을 써놓고 의미가 불분명하다 싶을때 형용사 부사 등의 '꾸며주는 말'을 먼저 제거해나간다(젠장, 이 문장도 지저분하다). 그럼 문장이 한층 더 깔끔해진다. 물론 앞서 누누이 말했듯 나도 잘 못하는 일들이다. 내 문장도 아주 더러울 때가 많다. 그러나 가끔 보면 현란하게 수식어를 입혀야 문장이 그럴싸해 보인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글에서 중요한 건 내용이지 문장의 꾸밈새가 아니다. 나부터 글이 좀 자신이 없을 때면 어떻게 해야 문장을 좀 더 그럴싸하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실 내가 위에 쓴 대부분의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고 황현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 같은 허접 말고 대가의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보고 싶다면 아래 기사를 참고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http://h2.khan.co.kr/201808081614001


오늘은 갑자기 글쓰기에 대해 지인들이 가끔 조언을 구하던 경험이 떠올라 이렇게 글로 써 봤다. 길게 쓰긴 했지만 사실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 이것도 너무 식상한 표현인가? 하지만 실제로 나 역시 글쓰기는 매일 연습하고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런 몇 가지 핵심을 명심하며 글을 쓴다면, 언젠가는 '그래도 꽤 괜찮은'글을 썼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같잖다고 생각할 수 있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수익을 글을 써서 벌어먹고 사는 이가 하는 아주 미세한 팁 정도로만 생각하고 너그러이 보아 주시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친애하는 유미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